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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 진심인 ‘연쇄창업가’, 커뮤니티 SaaS 서비스 스타트업까지 창업한 이유는[스테파니]

입력 | 2023-03-02 08:00:00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에서 스타트업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김하경 기자입니다.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집단지성의 힘을 믿으시나요?

당장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느 정도 수긍은 하시겠지만 그 힘이 어느 정도로 큰지는 가늠이 잘 안되시죠.

대표적인 예로는 ‘위키피디아’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보 생성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면서 잘못된 정보는 자연스럽게 수정이 되고, 부족한 정보는 보완이 이뤄지며 참고하기 좋은 정보가 생성되죠,

스타트업 업계에도 집단지성, 커뮤니티의 힘을 믿는 창업가가 있습니다.

바로 커뮤니티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스타트업 ‘CAN’의 호창성 대표(49)·문지원 대표(48)인데요.

앞서 이들은 지금의 메타버스 환경과 비슷한 가상공간 서비스 스타트업 ①‘웹씨인터미디어’(2000년)를 시작으로 글로벌 OTT 서비스 ②‘비키’(2007년) ③‘빙글’(2011년) 등을 창업했습니다. 연쇄창업가이자 부부창업가인 이들에게 CAN은 네 번째 스타트 창업입니다.

네 개의 스타트업이 언뜻 보기엔 서로 달라 보이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커뮤니티’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이들 스타트업을 관통합니다.

이번 스테파니에서는 ‘커뮤니티에 진심인’ 호창성·문지원 대표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어 인터뷰는 줌으로 진행됐습니다.

커뮤니티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스타트업 ‘CAN’의 호창성·문지원 대표. CAN 제공.



●첫 창업, 시대를 너무 앞서나가 실패
두 대표의 첫 창업 ‘웹씨인터미디어’는 호 대표의 대학 졸업작품에서 발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재학중이었던 호 대표와 이대 특수교육과에 갓 입학한 문 대표가 처음 만난 건 이들의 고향인 부산에서 열린 조인트 동문회였습니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이들은 데이트를 하면서 공통의 관심사였던 뇌생리학과 컴퓨팅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문 대표는 이후 서양학과를 복수전공했는데요. 미술과 컴퓨터가 오버랩되면서 공통 관심사가 컴퓨터 그래픽스로 발전했다고 하네요. 가상공간 서비스 스타트업 ‘웹씨인터미디어’를 창업하게 된 배경입니다. 마치 메타버스 세상에서 아바타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교류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다는데요.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나머지 첫 창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지금이야 워낙 인터넷 환경이 좋지만, 이들이 창업했던 2000년은 인터넷을 전화선으로 연결하던 시절이었죠.


●두 번째 창업 ‘비키’ 통해 커뮤니티의 힘 체감
첫 스타트업을 정리한 두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두 번째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지금이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많이 발전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창업 환경이 척박했죠.

두 대표는 우선 미국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문 대표는 하버드를, 호 대표는 스탠퍼드를 선택했는데요. 이곳에서 창업에 필요한 네트워크와 기회를 확보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의 영감은 문 대표가 유학 생활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미국 드라마였다는데요.

문 대표는 “언어는 내재화해야 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대개 지식 습득 방식으로 영어를 가르치다 보니 말하기가 어려웠고, 그런 방법 자체에 굉장한 원망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언어를 배울 때는 그 언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경험을 해야 하는데,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직접 체험할 수 없을 때는 드라마가 차선책”이라며 “문화적 맥락을 같이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두 번째 스타트업 ‘비키’는 회원들이 전 세계 드라마, 영화 등에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플랫폼이었습니다. 두 대표처럼 미국에 유학하러 온 한국인 친구와 선후배들이 너무나 열광하면서 시드 투자에 참여했다고 하고요. 호 대표가 스탠포드대 MBA 수업 시간에 비키의 아이디어를 발표하자 참관인으로 왔던 실리콘밸리 VC에서도 초기 투자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전문 번역가가 자막을 만드는 것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문 대표는 “언어생활에는 다양한 맥락적 이해가 필요한데, 전문 번역가들은 각 영역의 전문가에 비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비키에서는 유저들의 연령과 직업 등이 다양하다 보니 메디컬 드라마를 번역할 때면 유저들이 의사를 소환하고, 법률 드라마면 변호사를 소환하고, 유행어나 슬랭(속어)이 들어가 있는 경우 10대들을 소환해서 가장 알맞은 느낌으로 번역을 했다고 하는데요. 커뮤니티가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 셈이죠.

심지어 자막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별도의 보상이 없었는데도 계속해서 이 자막 커뮤니티는 활성화됐다고 합니다. 당시 두 대표가 유저들에게 물어보니 돌아온 공통적인 답변은 ‘이곳에서의 활동이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되는 순간 재미를 잃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합니다.

유저들은 서비스에 열띤 반응을 하고 있었지만, 비키도 금융위기의 영향을 피해 갈 순 없었습니다. 호 대표는 “금융위기 전에는 VC들이 ‘수익모델이 없어도 아이디어가 좋고 1억 명의 유저를 모을 수 있다는 잠재력만 보여주면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고 하더니, 금융위기가 터지니까 스탠스가 180도 달라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최근 투자시장에 겨울이 찾아오면서 스타트업들이 듣는 이야기가 오버랩되지 않나요?)

결국 비키는 서비스를 종료할 위기에까지 처했는데요.

그런데 서비스 종료 공지를 올리자, 비키 사용자들이 ‘기부금을 낼 테니 서비스를 유지해달라’며 발 벗고 나섰다고 합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서비스를 유지한 비키는 겨울을 버텨냈고, 시리즈 A 투자도 유치했죠.

당시 겨울을 버텨낸 비결에 대해 묻자, 문 대표는 “비키는 유저들이 이유 없이 좋아하는 팬심이 아니었다”며 “결국 창업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두 대표는 2013년 일본 라쿠텐에 2억 달러(약 2200억 원)에 비키를 매각했습니다.

호 대표는 “비키의 비즈니스에서 크게 차지하는 부분 중 하나가 콘텐츠 라이센싱 부분이었는데, 이 영역은 ‘누가 더 큰 지갑을 가지냐’가 중요한 영역이었다”며 “우리 부부는 테크이노베이션이 더 즐거운 사람들이었던 반면 비키의 비즈니스에서는 자본력이 더 중요해지면서 매각을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커뮤니티 진심의 끝판왕, 커뮤니티 SaaS 서비스 ‘CAN’
두 대표의 세 번째 창업은 관심 기반 소셜미디어 ‘빙글’입니다. 커뮤니티에 진심인 나머지 비키를 매각하기 전인 2011년 빙글을 창업했습니다.

호 대표는 “(비키를 경영하면서) 콘텐츠 라이센싱에 의존하지 않는 이노베이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커뮤니티에서 상호작용을 만들어내고, 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빙글을 창업했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SNS와 달리 빙글은 유저가 관심사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이도록 하는 소셜미디어였습니다. 빙글은 MAU(월간 활성 이용자)가 1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세를 이어갔다는데요. 그렇게 잘 나가던 빙글은 호 대표가 기소되면서 투자가 취소되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2년여간 법정투쟁이 이어지면서 하락세를 걸었습니다.

지금의 ‘CAN’은 빙글에서 끝까지 남아준 동료들과 함께 창업한 스타트업입니다. CAN(Community Alliance Network)은 누구나 빙글 같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티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요.

호 대표는 “우리가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지을 때 산에 가서 나무를 캐오는 것까지 하지는 않는데, 유독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는 농사부터 수확까지 다 하고 있다”며 “CAN은 이미 만들어둔 컨테이너 방, 화장실, 부엌 등을 필요에 따라 빠르게 조합해 건물을 완성하는 것처럼, 이미 모듈화해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기업에) 제공한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커뮤니티처럼 직접 소비자를 대면하는 플랫폼의 경우 사내 전산시스템을 만들 때보다 더 까다롭다는데요. 사내 전산시스템은 구성원들이 조금 불편함을 느껴도 계속 쓰게 되지만, 직접 소비자를 대면하는 플랫폼은 UX나 트렌드가 서비스 성공과 직결돼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개발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죠.

문제는 외주 개발을 맡길 경우 유지보수 관리 비용이 계속해서 들고, 이마저도 플랫폼을 만든 개발자가 퇴사하면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IT 전문 회사가 아닌 이상 굉장히 유능한 개발자를 채용해 내부에 개발팀을 꾸리기도 쉽지 않구요.

CAN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습니다. 호 대표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나 테크 전문가들은 같은 비용이 들어간다면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입증이 된 외부 솔루션을 쓰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이라고 보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소 생소해 보이는 ‘커뮤니티 SaaS 서비스’, 실제로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요?

수산물 직거래 플랫폼 ‘파도상자’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는데요. 스타트업 ‘공유어장’에서 운영하는 이 플랫폼은 커뮤니티 회원들이 어부에게 조업을 요청하면, 어부가 직접 요청받은 수산물을 잡아 보내줍니다. 파도상자 서비스는 CAN을 이용해서 구축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신사업팀에서 이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번 스테파니에서는 커뮤니티에 진심인 연쇄창업가 부부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앞으로도 스타트업 업계의 재밌는 이력과 경험을 가진 인물들을 발굴해 독자들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