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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숲 속 키작은 ‘레고 체육관’… 아이들이 숨쉴 놀이터죠”

입력 | 2023-03-02 03:00:00

서울 청원초 체육관 설계 김한중 대표
작고 만만해 보이게 높이 낮추고, 알록달록 장난감처럼 지붕 꾸며
내부에 행사용 단상 설치 않고, 밖 바라볼 수 있게 앞면에 유리창



서울 노원구 청원초등학교 옥상에서 김한중 그라운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자신이 설계한 체육관을 가리켰다. 고층 아파트와 학교 건물로 둘러싸인 가운데 알록달록하고 낮은 체육관이 위압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 노원구 청원초등학교는 15층 높이의 약 1만 가구 아파트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유치원과 중학교, 남·여고까지 한데 모여 있어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풍경이다.

회색빛 건물들 속 키 작고 알록달록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지난해 9월 서울시 건축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청원초 체육관이다. 5층 높이 초등학교 건물에서 내려다본 체육관 지붕은 형형색색의 레고 블록을 꽂아둔 듯했다. 학교법인 청원학원의 의뢰로 김한중 그라운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40)와 이혜서 건축사사무소 눅 대표(38)가 2021년 10월 완공했다. 청원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지난달 22일 만난 김 대표는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작고 만만한 체육관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축 면적은 초등학교 건물 앞 자투리 공간 680㎡뿐이었다. 농구장 면적이 420㎡인 것을 감안하면 체육관 크기를 줄여야 했던 상황. 게다가 더 큰 숙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위압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건축가들은 고민 끝에 지표보다 1.8m가량 바닥이 낮은 키 작은 체육관을 설계했다. 체육관 전체 높이는 9.1m로 지으면서 5분의 1가량은 지하화한 것. 덕분에 학교에서 바라본 체육관은 7.3m로 주변 건물에 비해 ‘만만해 보인다’.

체육관 출입구 길목에는 계단 대신 완만한 내리막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수업 동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어떤 진입장벽도 없이 내리막을 달려 거침없이 체육관으로 향하길 바랐다”고 했다. 체육관 내부에는 교내 행사를 위한 단상도 설치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올라가야 할 계단이 생기는 순간 거긴 어른의 공간이 되거든요. 누군가는 위에 서고 누군가는 아래에 선다는 개념은 체육관에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작고 만만한 건물을 짓고 보니 지붕이 신경 쓰였다. 5층 높이 초등학교 복도 어디서든 체육관 지붕이 훤히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체육관에 있는 시간보다 체육관 지붕을 보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초록색 방수 페인트로 칠해진 못생긴 지붕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고민 끝에 박공지붕에 주로 쓰이는 건축 자재 ‘징크’를 주황, 하늘, 연두, 베이지색으로 조합해 지붕에 얹었다. 학교 복도에 난 창문 너머로 ‘장난감 같은’ 지붕 풍경이 생긴 셈이다.

체육관 내부에서 바라본 정원 풍경. ⓒ노경, 그라운드아키텍츠 제공 

체육관 앞 내리막길은 작은 정원으로 꾸몄다. 그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만든 길을 주로 밟는 아이들에게는 잔디가 있는 숨 쉴 틈이 필요하다”고 했다. 체육관 전면에는 유리창을 내 실내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이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창을 열면 바깥 공기와 바람, 햇빛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실내체육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길 바랐어요. 이곳을 체육관이 아니라 운동장처럼 막 썼으면 좋겠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