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서광원의 자연과 삶]〈68〉

입력 | 2023-03-02 03:00:00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뭘까? 한둘이 아니겠지만 요즘 말로 멘털이 탈탈 털려 힘 빠지고 진 빠졌을 때, 스스로 힘을 내는 것도 그중 하나다. 몸은 천근만근, 손끝 까딱하기 싫어지고 늪에 빠진 게 이런 건가 싶을 때 힘을 내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니 정말 힘들다. 힘이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겠는가?

언젠가 원하던 부서로 가지 못해 풀이 팍 죽어 있는데, 그런 상황에 적잖이 기여했던 한 선배가 “힘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마운 마음은커녕 손이 부르르 떨렸다. 주먹이라도 한 대 날리고 싶었다. 훼방을 놓고는 힘내라니! 낼 힘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어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들으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힘내라” “파이팅!” 이러는 사람을 보면 ‘확 패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한참 웃었다. 그러고 보니 산통으로 고생하는 산모들도 그렇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난데없이 험한 욕을 마구 쏟아붓는 이들이 있다. 죽을힘을 다 쓰고 있는데 대책 없이 “힘내”라고만 하는 남편에게 화가 나서 말이다.

어쨌든 이럴 때 다시 힘을 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언젠가 복수초라는 꽃을 보면서 적잖이 위안 받았던 적이 있다. 그저 눈 속에서 피는 꽃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면 보인다고,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보니 다시 보였다.

복수초의 원산지는 만주의 북쪽 아무르강 근처의 시베리아 지역인데, 이곳은 5월쯤 돼야 봄이 온다. 물론 온다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데다, 8월이면 벌써 겨울이 서성거리니 시간이 많지 않다. 봄이라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수많은 다른 꽃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한발 앞서기’ 전략이다. 우리가 강심제로 쓰는 물질인 강심배당체(cardiac glycoside)를 확보해 살짝 녹기 시작한 눈의 수분과 결합시켜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꽃을 피운 복수초의 뿌리를 보면 다른 풀들의 뿌리와 달리 온기가 느껴지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유다.

이들은 이 열로 꽃 속을 따뜻하게 해서 벌들에게 손짓한다. 여기 따뜻한 곳에 맛있는 꿀이 있으니 어서 오라고. 벌들에게 2월은 보릿고개 같은 때라 환영은 당연한 일. 스스로 열을 낼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더러 누군가 힘을 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럴 순 없으니 결국은 스스로 힘을 내야 한다. 나를 일으키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일 수밖에 없기에 스스로 힘을 낼 줄 알아야 힘 있게 살 수 있다. 복수초가 그렇듯 스스로를 따뜻하게 할 수 있다면 차가운 언 땅에서 눈 속의 꽃 같은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고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