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열린 흑우 김대환 추모공연에서 노래하고 있는 장사익(가운데). 맨 왼쪽이 1세대 트로이카 중 한명인 배우 문희다. 김녕만 사진가 제공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는 1일 흑우(黑雨) 김대환 19주기 추모 공연이 열렸다. 김대환(1933~2004)은 열 손가락에 북채, 장구채, 드럼 스틱 등 여섯 개의 채를 쥐고 북 등 각종 타악기를 두드리는 독특한 연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쌀알 한 톨에 반야심경 283자를 모두 새겨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매년 그가 타계한 3월 1일 열리고 있는 이 공연은 소리꾼 장사익, 해금 강은일, 거문고 허윤정, 트럼펫 최선배, 오쿠라 쇼노스케(일본 전통 북), 요코자와 가즈야(일본 전통 피리), 가가야 사나에(현대 무용) 등 흑우와 인연을 맺은 한국과 일본의 최정상 예술인들이 함께하고 있다. 흑우를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기는 오쿠라 쇼노스케는 일본 무형문화재 인증 보유자로 전통극인 노(能)의 보존과 전승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추모제지만 공연장을 가득 채운 것은 즐거움이었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한바탕 노는 거죠. 초창기에 구경 왔던 분 중에는 이게 무슨 공연이냐며 나가 버린 사람도 있었어요. 평소에 보던 공연과는 아주 다르니까요. 하하하.” (장사익)
이날 공연에는 1960년대 영화계를 풍미했던 1세대 트로이카(문희 윤정희 남정임) 중 한 명인 문희의 특별공연도 열렸다. 그가 오래전부터 취미로 정가(正歌)를 배우고 있다는 걸 안 장사익이 몇 년 전부터 함께 하자고 졸랐다고 한다. 정가는 우리 전통 민간 성악곡의 총칭인 속가(俗歌) 속요(俗謠)와 구분하기 위하여 근래에 사용된 용어로 시조, 가곡, 가사 등을 말한다. 이날 공연에서 문희는 평시조인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 등 두 곡을 북 등 반주에 맞춰 불렀다. 문희는 “많이 부족하지만, 선생님이 ‘소리가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고 그냥 함께 어우러져 놀면 된다’라고 해 용기를 냈다”라고 말했다.
추모제란 특성상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공연장(250여석)은 꽉 찼다. 장사익은 공연 시작 5분 전까지 흑우가 타던 오토바이 전시물 앞에서 입장하는 모든 관객과 일일이 인사하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흑우를 추모했다. 예인들과 관객이 흥겹게 논 한바탕 무대의 마지막은 ‘아리랑’ 떼창.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인근 음식점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뒤풀이 겸 즉석 공연이 이어졌다. 장사익은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누구든 부르고 싶으면 마음껏 노래도 부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말 그대로 잔치”라며 “보이지는 않아도 흑우도 한바탕 잘 놀다 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