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대한적십자사가 회비모금 목적으로 집집마다 지로통지서를 보낼 수 있게 한 현행 법규에는 문제가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첫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현행 대한적십자사조직법(적십자법) 8조 등이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위헌확인 소송을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기각·각하했다고 3일 밝혔다.
적십자사는 행정안전부에 전국 만 25~75세 세대주 성명과 주소를 요청하고, 이 주소로 1만원짜리 지로통지서를 발송한다.
지로통지서를 받은 A 씨 등은 적십자법 제8조, 국가의 자료제공행위, 적십자사의 지로통지서 발송행위 등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국가나 지자체가 적십자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며 항의했다.
그러나 헌재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적십자사가 정부의 인도적 활동을 보조하거나 남북교류사업, 혈액사업 등 특수 사업을 수행해온 점 등을 고려할 때 적십자회비 모금을 위한 적십자법 8조의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는 취지다.
A 씨 등은 적십자회비가 세금으로 오인될 수 있어 재산권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이를 각하했다. 헌재는 “지로통지서 상단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성금’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고, 헌법소원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반대의견을 낸 이선애·문형배 재판관은 “자료제공조항의 ‘특별한 사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특별한 사유를 개인정보보호법 문구에 준하는 것으로 막연히 해석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또 “시행령 조항이 회비모금의 목적으로 세대주 이름까지 적십자사에 제공하도록 한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적십자사는 전국의 세대주에게 지로통지서를 발송했지만, 올해부터는 최근 5년간 모금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세대주에게만 발송할 예정이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