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당혹스러운 표정의 이재명 대표(가운데)와 정청래 최고위원(이 대표 오른쪽) 등 민주당 지도부. 이날 표결 결과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무효 11명, 기권 9명으로 체포동의안이 부결은 됐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당 내 이탈표에 당 지도부도 크게 당황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CBS라디오 진행자 “170 이상.”
>박주민 “예, 거의 저는 가결표를 던질 사람이 없다고 보는 쪽입니다.”
MBC라디오 진행자 “무기명 비밀투표잖아요. 이게 변수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정성호 의원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부당하다는 데 상당히 공감대가 있고요. 또 당원 지지자들이 더 강력하게 거기에 대해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이탈표는 많지는 않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 반대표가 161표가 나왔잖아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것보다는 반대표가 더 나올 거라고 자신하십니까?”
>정성호 “그렇게 생각합니다.”
BBS라디오 진행자 “당 내 분위기는 역시 부결입니까?”
>김의겸 의원 “네. 그렇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진행자 “무효표나 기권표, 일부에서는 ‘반란표’라고 표현을 하던데요. 이런 무효나 기권표가 나올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김의겸 “저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오전부터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일제히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 나온 161표보다 훨씬 많은 부결표가 나올 것이란거죠.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날 민주당 전원(169명)에 기본소득당(1명), 민주당 출신 친명 성향의 무소속(6명, 양향자 의원 제외 시)을 합쳐 부결표는 176표가 나왔어야 합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에도 직접 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 및 인사검증실태조사단 구성을 예고했습니다. “윤석열 정권 검증 기능이 완전히 작동 불능 상태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이 정권의 인사는 온통 망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핵심은 기권표 숫자다. 다들 자꾸 가결 부결만 따지는데, 그게 아니고 무효나 기권표를 잘 봐라. 기권은 상당수 민주당에서 나올 것이고, (기표소에) 들어가서 가(可) 부(否)를 안 쓰고, ‘찬’, ‘반’이라고 쓰거나 동그라미, 엑스표 하거나 일부러 점 찍는 의원들이 꼭 있는데,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다. 그런 무표효는 ‘이재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번에는 봐주지만 다음번 (표결) 땐 안 봐준다’는 거지. 이번엔 부결이 될 거다. 다만 부결표가 과반에 한참 못 미치거나, 심지어 가결표보다 적다? 그럼 이재명 체제는 완전히 흔들리게 되는 거다.” (중립 성향의 A 의원)
“오늘 부결은 될 거다. 압도적 부결이 됐든, 애매한 부결이 됐든, 어쨌든 결론은 이제 민주당은 엄청난 내분이 불가피하다는 거다. 압도적 부결이면 우리가 ‘자, 이번엔 부결시켜줬으니 이제 당신(이 대표)이 알아서 당을 위해 결단하시오’라고 할 거고, 애매한 부결이라고 해서 당장 나가라 하진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사퇴론에 더 힘이 실릴 거라고 본다. 물론 내가 아는 이재명이라면 그래도 버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면 버틸수록 그의 명분도 리더십도 사라지겠지.” (비명계 B 의원)
“이탈표가 절대 (지도부가 예상하는) 10표는 아니다. 의원들 사이에서 이미 30표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보좌진 C)
돌이켜보니 ‘예언’에 가까운 말들이었네요. 이 때 심상치 않은 전조증상을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 동료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격려와 응원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이 때만 해도 지도부는 사실상의 당론으로 부결될 것을 예상했다. 뉴시스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 시장 측은 위례, 대장동 공모지침서를 남욱, 김만배 등 일당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아예 수험생이 시험문제를 직접 출제하게 한 것입니다.”
한 장관은 15분 동안 이 대표의 혐의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후불제 뇌물’ ‘할부식 뇌물’ 등 찰진 비유법을 자주 썼습니다. 꼭 대치동 1타 강사 같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여전히 비호감이긴 하지만 솔직히 설명 하나는 얄미울 만큼 잘하더라”고 했습니다.
한 장관은 체포동의 요구를 설명하는 내내 이 대표가 아닌 ‘이 시장’이라고 호칭했습니다. 무려 43번 불렀더군요. “제가 지금까지 설명 드린 어디에도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범죄혐의는 없습니다. 오직 ‘성남시장 이재명의’ 지역토착비리 범죄혐의만 있을 뿐입니다”라는 마지막 멘트에서도 의원들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래도 중간 중간 민주당 의원석에선 “김건희 여사도 구속해라” “그만 들어가” “정순신 사과해라” 등의 고성과 야유가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이 대표는 옆 자리 정청래 의원과 담소를 주고받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국회 본회의장 맨 뒷줄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체포동의 요구 설명을 웃으며 듣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 YTN 화면 캡쳐.
2월 27일 서울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체포동의안에 투표를 하고 있다. 이 대표 뒤는 박홍근 원내대표. 투표결과는 부결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를 두고 이날 지인들로부터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전자투표로 안하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본회의에서 인사 관련 사안은 무기명 수기 투표가 원칙이지만 여야가 합의 시엔 보다 간편한 전자투표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노 의원 체포동의안 때도 전자투표로 진행했죠. 국민의힘은 “우리는 전자투표를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수기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최근 인사 안건은 전자투표로 해왔으니 이번에도 그리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국민의힘에서 원칙대로 하자고 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같은 협상, 다른 말, 여의도는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이상한 분위기는 오후 3시 33분 경 감지됐습니다. 한창 감표위원들끼리 웅성웅성하더니 이윽고 국민의힘 위원들 사이에서 “다 무효야 무효!” “의사국장님 내려와보세요” 등 고성이 터져 나온거죠.
체포동의안 개표 과정 중 감표위원들이 손에 투표 용지를 들고 무효표 처리 여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뉴스1
뉴스1
“(한자를) 보고 쓰지도 못하면서 이걸 이렇게 하면 되냐”(김형동 의원) “실수로 점 찍혀도 무효인데 뭐하시는 겁니까!” “무기명인데 다 공개합시다” (배현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민주당에서도 “배현진 네가 뭔데 띄우라(공개하라) 말라 그래” “시끄럽다” 등의 반박이 이어졌습니다.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출입기자들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이탈표가 많으면 10여 표 아니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예상치 못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니 당황스럽더군요. “무효·기권표를 잘 보라”던 A 의원의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수박’(겉으론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의미의 은어)으로 찍은 비명계 의원들에게 “부결표를 던졌다는 증거를 대라”고 문자 테러를 하는가 하면, 이들의 얼굴 사진과 휴대전화번호를 올린 ‘공천 탈락 살생부’를 작성해 돌렸습니다.
결국 다음날 이 대표가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이라면 (가결표 예상) 명단을 만들어 공격하는 행위를 중단해달라”는 입장을 냈지만, ‘재명이네 마을’ 등 친명 팬카페에는 “용돈 안 줘도 된다는 부모님 말씀 같은 것 아니냐. 무슨 마음인지는 이해하지만 억지로라도 쥐어드리고 나오는 게 자식 마음”이라는 전혀 다른 해석 글이 올라왔습니다. 오히려 그 뒤로 미국에 있는 이낙연 전 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이낙연 영구제명 청원’ 글이 올라오기까지 하더군요.
이 대표는 자신의 체포동의안 관련 신상발언에서 “아무리 깊어도 영원한 밤은 없습니다. 매서운 겨울도 봄을 이기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만, 민주당에 봄이 오려면 아직 먼 것 같습니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투표가 진행됐지만 부결됐다. 하지만 투표수에서는 가결이 1표 더 많았다. 이 대표가 본회의장을 나와 입장을 밝힌 뒤 국회를 떠났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