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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한국 비행기가 온다”…신문1면에 내며 감격한 이바라키 공항 이야기[떴다떴다 변비행]

입력 | 2023-03-03 13:54:00


2019년 9월 18일 일본 이바라키현 이바라키 공항. 공항 직원들과 현 관계자들이 공항에 나와 1열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또 만나길 바랍니다”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이날은 이바라키 공항에 한국 항공사로는 유일하게 취항하고 있던 이스타항공이 정기 노선 운영을 중단한 날이었습니다. 한일 무역 갈등으로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으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약 1년간 운영한 노선을 포기 한 겁니다.

2019년 9월 18일 일본 이바라키 공항 관계자들이 이바라키 공항에서 이스타항공 및 한국 관계자들을 배웅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그동안 고마웠고, 또 만나길 바란다”라는 염원을 담았다.  독자 제공

시작만큼 끝맺음도 중요하다 했던가요. 이바라키현 직원들은 떠나는 이스타항공 직원들을 그렇게 끝까지 배웅했습니다.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고, 눈시울을 붉히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바라키현 공항 정책을 이끌었던 모리즈미 국장은 “우리는 인연을 너무 소중하게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외교·정치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었지만,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열심히 살던 사람들은 아쉬운 작별을 슬퍼하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3년 6개월 만의 운항 재개
곧 회복될 것 같던 하늘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또 한 번 굳게 닫힙니다. 공항이 언제 다시 열릴지,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됐죠. 그리고 2023년 3월. 정기 노선을 중단한 지 3년 6개월 만에 이바라키의 하늘길이 다시 열리게 됐습니다.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가 3월 25일~4월 6일까지 주 3회(화,목,토) 인천~이바라키 노선에 부정기편 (전세기)을 띄우기로 한 겁니다.

진에어 항공기의 모습.  진에어는 세연투어와 함께 3월 25일~4월 6일까지 주 3회 인천~이바라키 노선을 운영한다. 진에어 제공

일본은 코로나 기간 강도 높은 방역 규제를 실시했습니다. 지난해 봄이 지나서야 닫았던 국제노선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죠. 그런데 코로나 기간 일본 공항의 인력들이 많이 빠져나갔고, 국제선 재개는 했으나 공항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초반엔 10개 도시에만 국제선 정기편 취항을 허락했죠. 공항 보안과 검역, 수하물 처리 등의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국제선을 늘리고 싶어도 늘리지 못한 겁니다. 공항 재개를 빨리하고 싶어 한 지방 소도시들과 중앙정부 사이에 엇박자가 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바라키현은 빠르게 공항 인프라와 공항 인력을 정상화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이바라키현 관계자는 “국제선의 운항이 하네다와 나리타 등 주요 공항으로 제한됐지만, 이바라키는 공항의 수요 환기를 위해서 국내선을 2500엔(약 2만4000원)에 다닐 수 있는 항공권을 팔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제선의 운항 재개를 위해서, 공항 조업사나 CIQ(세관, 출입국, 검역) 관계 기관을 유지하면서 버텼다”고 말했습니다.

이바라키현은 올해 초부터 한국 노선 재개에 열을 올렸습니다. 오이가와 가즈히코 이바라키현 지사가 “한국으로의 취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라고 지시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2017년 이바라키현 지사로 당선된 오이가와 지사는 이바라키 공항과 이바라키 여행 및 관광을 살리기 위해 강도 높은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8년 이스타항공 정기노선을 유치한 것도 오이가와 지사 때의 일이었죠.

특히 이바라키는 오래전부터 한국 여행 및 항공업계를 잘 아는 한국인을 채용해 한국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해왔습니다. 또한 2019년 당시 현 직원과 전문가 80여 명으로 구성된 전략부서를 만들어 공항과 여행콘텐츠를 연계한 관광 아이디어를 만들었죠. 현 직원들이 몇 번이고 직접 한국 항공사를 찾아 취항을 부탁하기도 했죠. 한 도시에 항공사를 취항시키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항 관계자들이 직접 항공사를 찾아다니며 이른바 ‘영업’을 해야 합니다. 항공사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인센티브와 여행지, 각종 혜택을 줘야 하죠. 한국 취항을 간절하게 원한 이바라키현과 진에어, 세연투어 등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부정기편 취항을 이뤄낸 겁니다. 이바라키현의 한 한국인 관계자는 “이바라키 국제선이 재개되면 한국 항공기가 가장 먼저 착륙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염원이 이뤄졌다.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바라키~서울 운항으로 전세기 국제선 3년만” 인천~이바라키 노선 운항 재개를 알리는 이바라키 신문의 헤드라인.  독자 제공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된 이바라키 공항
일본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80km 떨어진 이바라키 공항은 ‘저비용 고효율’을 대표하는 지방 공항 중 하나입니다. 2010년 3월 11일 개항한 이바라키 공항은 도쿄 하네다 공항과 나리타 공항으로 몰리는 항공기와 여행객 수요를 분산할 목적으로 약 280억 원을 들여 지어졌죠. 하지만, 개항 초기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연간 이용객을 80만 명으로 추정했지만, 실제 이용객은 4분의 1 수준인 20만 명도 채 안 됐다고 합니다. 일본 언론은 공공 예산의 전형적인 낭비 사례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일본 정부는 이바라키 공항을 끝으로 “더 이상 일본에 공항은 없다”라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이바라키 공항의 모습.  동아일보DB

이바라키 공항은 군 공항도 있어서 민영화도 불가능했습니다. 이바라키현은 ‘일단 여행객들을 이바라키에 오게 하자’는 목표로 공항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합니다. 내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바라키 공항에 있는 3500석 규모의 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합니다. 일단 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공항에 무료로 주차하고 인근 지역 여행을 유도하기 위한 유인책이었죠. 공항 이용객들에게 공항에서 도쿄역까지 500엔(약 50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셔틀버스를 제공했고, 하루 ‘1000엔 렌터카’ 이벤트도 진행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11년 공항 이용객 3만3000명에서 2018년엔 13만 명으로 급증합니다. 2014년 회계연도부터 영업이익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중국 춘추항공과 대만 타이거에어, 한국 이스타항공 등이 정기편을 띄우기도 했죠.


●골프와 야외 액티비티 강화하는 이바라키
이바라키의 전략은 간단합니다. “일단 이바라키에 오게 한 뒤, 여행 및 관광 콘텐츠로 감동을 주자”입니다. 공항과 여행업계가 함께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번 진에어 부정기편의 핵심 여행 상품은 ‘골프’입니다. 이바라키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골프 여행지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인수해 운영하고 있는 해발 400m에 있는 보보스(BOBOS) 컨트리클럽 등 유수의 골프장을 가지고 있죠. 이바라키현 관계자는 “이바라키에는 토너먼트가 열리는 명문 코스부터 손쉽게 골프를 칠 수 있는 코스, 세그웨이(두 바퀴로 달리는 전동 모빌리티)를 타고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코스 등 다양한 골프장이 있다. 한국 여행사와 항공사에도 골프장과 체험형 액티비티를 어필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사이클링 루트인 ‘쓰쿠바 가스미가우라 린린 로드’와 현 내 모든 양조장의 일본술(사케)을 즐길 수 있는 ‘지자케(고장 술) 미토’, 위스키 증류소인 ‘기우치 주조 야사토 증류소’등도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이바라키현은 설명했습니다.

보보스 CC  전경 <보보스 홈페이지> 

인천~이바라키 하늘길이 중단된 지 3년 6개월의 부정기편 운항 소식이 반가워 이바라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한국 노선을 담당했던 이바라키현의 한 공무원은 틈틈이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에서 만났을 땐 거리의 간판을 읽고 한국어 대화도 할 수 있다며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바라키현은 한일 관계가 악화되던 때에도 이바라키 공항에서 한복을 소개하고 김치와 회오리 감자 등 한국의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도 열었죠. 한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던 순간들입니다.

누군가는 한일 관계 개선과 노선 재개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느 한 노선이 새로 열리고 또 다시 열리는 이야기엔 사람의 내음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들이 하늘길에 여럿 흩어져 있기도 합니다.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양국의 하늘길이 만개해서 항공·여행 업계가 함박웃음을 짓고, 여행객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변종국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