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넘어지고 쓰러져도 꺾이지 않는 청년’ 진도진 씨(상)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걸그룹 ‘페리블루’의 멤버 진도진 씨. 서울 마포구 ‘미러볼뮤직’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요즘 유행하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란 말을 참 좋아한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진심으로 빌게. 너는 더, 행복할 자격이 있어”(아이유의 노래 ‘이런 엔딩’에서)
허나, 그래도 기어코 걷는 이들이 있다. 파리한 손전등 불빛에 기대서라도 발을 내딛는다. 이미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데도, 기어코 무릎을 세운다. 그게 가야할 길이라 믿으며.
걸그룹 ‘페리블루’ 멤버 진도진 씨(29)는 13년째 그 ‘길’ 위에 선 청년이다. 페리블루는 2021년 데뷔한 6인조 아이돌. 포탈사이트에 프로필이 뜨지만, 100명에게 물으면 100명 모두 “누구?”라 반문할 정도로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게, 소속기획사는커녕 홍보담당자나 매니저도 없이 모든 걸 그들끼리 꾸려가는 ‘자생(自生)’ 걸그룹이다.
게다가 도진 씨는 1994년생. 걸그룹 치곤 적지 않은 나이다. 본인도 “우리나이로 벌써 서른”이라며 “근데 스물부터 (데뷔하기엔) 나이 많단 소릴 들어 별 타격도 없다”며 웃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잘 나간다는 걸그룹 ‘뉴진스’ 막내는 2008년생이다.
각오는 했겠지만, 그들에게 현실의 벽은 높고 두텁다. 활동 3년째지만 인지도는 제로에 가까운 상황. 인기도 수익도 안개처럼 가리어져 있다. 그런데도 도진 씨는 인터뷰 내내 “페리블루라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그저 “조금만 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길, 조금만 더 세상에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며. 어느 시린 겨울 날, 가슴에 소중한 불씨를 품은 진도진 씨를 만나봤다.
걸그룹 ‘페리블루’는 선아 슬 혜영 시호 현지 도진(왼쪽부터)으로 구성된 6인조 걸그룹이다. 2021년 데뷔해 ‘Call My Name’ ‘친구야 가자’ ‘Game Over’ 등의 노래를 발표했다. 유튜브 등에서 해당 노래의 뮤직비디오도 볼 수 있다. 진도진 씨 제공
“아유, 무슨 말씀을요. 원래 아이돌은 첫째도 둘째도 ‘인사’예요. 안녕하세요! 페리블루 진도진입니다! (웃음) 실은…, 인터뷰 요청 들어왔을 때 놀랐어요. 저희를 알리고 싶은 맘은 굴뚝같지만, 전 여러 번 ‘넘어졌던’ 사람이잖아요. 별로 이룬 게 없는데 기사거리가 될지 걱정됐어요. 그런데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해주셔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죠. 언제부터 아이돌을 꿈꿨습니까.
“원래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어요. 중학교 때 우연히 뮤지컬을 본 뒤 홀딱 빠져버렸죠. 학원에 다닌 건 중3때부터였습니다. 그때 눈여겨 보시던 학원 선생님께서 걸그룹 도전을 추천하셨어요. 바로 뮤지컬 배우가 되는 건 진입장벽도 높고, 제가 그쪽으로 재능이 있다고 봐주신 것 같아요.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이돌이 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단 점도 끌렸고요.”
-그 뒤 진로를 바꾼 건가요.
-기획사 오디션도 정말 통과하기 어렵다면서요.
“맞아요. 어렵게 준비해 갔는데, 1분도 안 돼 ‘수고하셨습니다’라며 퇴짜놓는 경우도 많아요. 다행히 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곡가 분과 협업하는 기획사에 고2 때 들어가게 됐어요. 거기 1년 반 정도 있었나?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이 시작된 거죠. 그 당시엔 스물세 살에나 데뷔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부터 6년이나 여기저기 옮겨 다녔네요.”
진도진 씨가 아직 첫 데뷔를 하기 전인 2014년 아이돌 연습생으로 있던 시절의 모습. 휴일도 없이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쳇바퀴처럼 연습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진도진 씨 제공
-연습생 생활은 어땠습니까.
“요즘은 꽤 알려지기도 했지만, 상상을 초월하죠. 일단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끝납니다. 학생 때도 수업 끝나자마자 가서 10시까지 있고요. 휴일도 없어요. 1년에 설날, 추석 하루씩 쉬었나? 짜여진 시간대로 계속 보컬 연습, 안무 연습…. 중간에 휴식시간도 거의 없어요. 가끔 우리끼리 연습할 때, 화장실에 숨어서 좀 쉬려고 해도 바로 연락이 와요. (어떻게 알고요?) 연습실 여기저기 CC(폐쇄회로) TV가 달려서 금방 알아요.”
-카메라로 감시한다고요. 일부에서나 벌어지는 일 아닌가요.
“음…, 제가 있었던 곳은 전부 다 그랬어요. 몰래 뭐 먹진 않는지, 늘어져 쉬진 않는지 체크하는 거죠. 삼시세끼 다 연습실에서 해결할 때가 잦은데, 동네 편의점도 함부로 못 가게 해요. 연습실이 대부분 지하에 있는데, 하루 종일 있다 나오면 핑하고 머리가 어지러워요. 갑갑하고 힘들었지만, 기획사 입장도 이해는 가요. 투자자나 업계 관계자들이 언제 방문할지 모르니 항상 스탠바이 하는 거죠. ‘상품’을 잘 준비했다가 언제든 선보일 수 있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까요. 기획사로선 돈을 투자한 건데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안 되잖아요.”
-상품이요? 아이돌 연습생을 그렇게 부르나요.
“어…, (잠시 뜸들이다가) 네, 그쪽 업계에선 다들 그렇게 불러요. 잘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상품. 저희한테 직접 얘기하는 분도 많았어요. ‘너희를 어떻게 좋은 상품으로 만들까 고민한다’ 뭐 이런 식으로요. 하도 익숙해서 그땐 그게 당연한 거라 여겼어요.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게 옳진 않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스트레스 받으면 그 세계에선 못 살아남죠.”
-그런 시간을 버텨내고 23세 때 데뷔한 거네요.
“네. 오래 걸렸죠. 이러다 데뷔도 못 하는 게 아닌지 두렵기도 했죠. 스무 살 때부터 걸그룹하기엔 나이가 많단 소릴 지겹게 들었거든요. 그러다 스물세 살 때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당시 3대 대형기획사 가운데 한곳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아서 연습생으로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다른 작은 기획사에서 ‘바로 데뷔할 멤버를 찾는다’며 걸그룹 영입을 제안했어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이도 적지 않고, 또 연습생 생활을 한다는 게 두려웠어요. 지금이면 그래도 대형기획사를 갔을 텐데, 그땐 데뷔라는 유혹이 너무 컸습니다.”
진도진 씨가 처음 걸그룹으로 데뷔한 뒤 한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던 모습. 그는 2017년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수 년 동안 힘든 연습생 시절을 거쳐 꿈에도 그리던 데뷔를 했지만, 현실은 그가 기대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고 한다. 진도진 씨 제공
-왠지 후회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너무 힘들었거든요. 데뷔는 했는데 꿈꿨던 생활과 너무나 달랐죠. 정말 그때 멤버들끼리 ‘우리 이러다 지리 선생님 해도 되겠다’는 푸념도 했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행사들을 뛰러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거든요. 전라도와 충청도, 강원도를 당일치기로 돌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밥이라도 챙겨주면 감사할 정도였죠. 그 와중에 재연프로그램 출연도 했어야 했습니다. 근데 2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활동했는데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아, 초기에 용돈이라며 30만 원 받은 게 한번 있네요.”
-말도 안 돼요. 보통 가수는 활동하면 정산을 해주잖아요.
“정산은 꿈도 못 꿨죠. 그건 이해해요. 뜨질 못했으니. 근데 쉬는 날도 없이 일했는데, 심지어 행사를 하루 서너 개씩 했는데 돌아오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심지어 녹초가 돼서 밤에 숙소에 돌아가다가 저녁 사주는 것도 아까워하더라고요. 대놓고 그런 기색을 내비칠 땐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었나 허망했어요. 매일 편의점 김밥 도시락 먹으며 일했는데 과연 나아지긴 하는 걸까.”
-그래서 2년 만에 관둔 건가요.
“네, 앞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마침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한 분이 새로운 4인조 걸그룹 제안을 해주셨어요. 방송 쪽에선 꽤 알려진 분인데, 그분이 저희를 음악프로그램에 꽂아주신 적도 있어요. 제 사정도 잘 아시고 인간적으로 믿음이 갔던지라, 기존 회사와 합의 하에 계약을 끝내고 옮겨갔어요. 근데 그분이 기획사를 차려 모든 걸 새로 셋팅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니 각자 돈을 좀 마련해 와라….”
-네? 걸그룹 멤버한테 돈을 내라고 했단 말입니까.
“(한참 머뭇거리다가) 제3자가 보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거 잘 알아요. 그런데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좋은 분이라 믿었고, ‘같이 함께 만들어보자’는 청사진에 희망을 품었어요. 당시 너무 지쳐있기도 했고, 지금이면 하나하나 따져본 뒤 결정했겠지만…. 일단 기존 그룹에서 미래가 암울해서 탈출구가 필요했어요. 꽤 큰돈이라 결국 부모님한테 도움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게 죄송할 따름이에요.”
진도진 씨가 최근 한 패션광고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찍은 사진. 그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번 수익들을 현재 몸담고 있는 걸그룹 ‘페리블루’를 유지하는데 쓰고 있다. 진도진 씨 제공
-왠지 결말을 알 듯한 기분이 듭니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어요. 공중파 음악방송도 출연하고, 나름 기대가 컸죠. 근데 데뷔 두세 달이 지나고 큰 반향이 없어서인지 분위기가 급변했어요. 사장님은 갈수록 얼굴을 비추는 일이 줄었고, 이상한 지방행사들만 가게하고. 하루 종일 숙소에 갇혀있다시피 한 적도 있고. 정신교육 시킨다며 몇 시간씩 운동장 뜀박질 시킨 적도 있었네요. 그 와중에 자꾸 돈이 더 필요하단 얘기만 하고, 말도 점점 거칠어지고…. 점점 첫 그룹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어요. 그러다보니 멤버들끼리도 관계가 나빠졌고요. 결국 모든 걸 그만하고 싶단 맘이 들었죠.”
-그렇게 2번째 걸그룹도 나오게 된 건가요.
“그것도 참 쉽지 않았어요. 사장님이 계약을 안 풀어주는 거예요. 만나서 상의하자 해놓고 약속장소에 나가면 다른 일이 생겼다며 일방적으로 취소하길 여러 차례였어요. 자기한테 왔던 것처럼 또 다른 데 갈까봐 그랬는지, 아예 만나주질 않았어요. 몇 달을 끌다가 다른 관계자가 얘기를 전해주는데, 빙빙 돌려 말하더니 ‘돈을 좀 주면 계약해지해줄 거 같다’고….”
-계약을 끝내는데 또 돈을 요구했단 말입니까.
“상식적으로 어이없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법적으로 대응하면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더군요. 저로선 지금 1분1초가 아깝고 아쉬운데, 그걸 버틸 재간이 없었어요. 결국 또 부모님이 나서서, 적지 않은 돈을 주겠다고 하니 그때서야 만나주더라고요….”
(※이미 그렁그렁하던 도진 씨는 결국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추스를 시간을 갖고자 인터뷰를 한동안 멈췄다.)
“죄송해요. 이제 눈물은 다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그 일 이후로 절대 안 울겠다고 다짐했는데도 가끔씩 컨트롤이 안 되네요. 하여튼…, 돈 주고 ‘앞으로 연예계 생활 안 하겠다’는 각서를 쓴 뒤에야 계약해지했어요.”
-각서를 왜 쓰게 한 건가요. 법적 효력도 없을 텐데.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돌이켜보면 자기 평판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그랬던 게 아닐까요. 뭔가 제 잘못으로 계약이 파기됐단 기록을 남기려는 것 같았어요. 당시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냥 다 관둘 생각뿐이었니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걸그룹은 내 인생에서 끝났다고 여겼으니까요.”
(하편에서 계속)
[나의 옛날 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진도진 씨가 보내준 사진들 가운데 첫 번째는 아이돌 연습생을 막 시작한 고2 때 연습실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나름 멋지게 의상을 차려입었지만 살짝 수줍어하는 표정이 묻어나네요. 진도진 씨 제공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