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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압박에 항공노선 뚝뚝 떼줘…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의 대가

입력 | 2023-03-03 17:31:00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계류장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하고 있다. 2022.9.29/뉴스1


대한항공(003490)이 영국 경쟁당국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020560)와의 기업결합을 승인받으면서 기업결합 절차에 속도가 붙고 있다.

다만 각국 경쟁당국의 관문을 넘을 때마다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잇따라 노선 일부를 반납하는 처지여서, 합병 완료 후 국적 항공사의 항공편 축소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리저리 떼어주고 나면 당초 빅딜을 통해 기대됐던 ‘메가 캐리어’ 탄생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지난 1일(현지시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영국의 승인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은 이제 14개국 중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경쟁당국의 승인만 남았다. 이번 영국 승인으로 EU 기업결합 승인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EU 경쟁당국은 7월까지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 2단계 심사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영국 당국의 심사 과정에서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 상당수를 포기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런던 히스로 공항에 주당 각각 10개와 7개의 슬롯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41%인 7개 슬롯을 영국 버진애틀랜틱에 넘기겠다고 제안한 끝에 영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얻었다.

대한항공이 런던 슬롯을 외항사에 내주기로 한 것은 두 항공사 통합에 따른 경쟁당국의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대한항공은 이미 지난해 말 중국 경쟁당국 승인을 받을 때에도 경쟁 제한이 우려되는 9개 노선에 대해 신규 진입을 희망하는 항공사가 있을 경우 슬롯을 이전하는 내용의 시정조치안을 제출해 승인을 얻어냈다. 지난해 2월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 과정에서도 전체 171개 노선 중 26개에 대해 기업 결합일로부터 10년간 운수권이나 슬롯을 이전하기로 했다.

남아 있는 EU의 2단계 심사와 미국 경쟁당국의 심사에서도 이런 운수권·슬롯 반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EU 경쟁당국은 항공사 기업결합 심사에서 까다롭게 슬롯 반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EU 지역 중복 노선이 상당한 만큼 꽤 많은 노선의 슬롯 반납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항공업계는 이번에 대한항공이 런던 노선 운수권의 40%을 포기한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국내 항공사 가운데 런던 노선을 받아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실현 가능한 방안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슬롯을 받아갈 버진애틀랜틱은 대한항공과 함께 ‘스카이팀’에 소속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LCC(저비용항공사) 일부가 대형기를 투입해 미국 등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고 있지만, 추가 취항 등 여력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LCC 중 대형기를 도입한 곳은 티웨이항공(091810)과 에어프레미아 정도다.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상반기 347석 규모의 대형기 A330-300 3대를 도입해 12월부터 인천~시드니 노선을 띄웠다. 대형기 3대를 도입한 에어프레미아도 지난해 10월부터 인천~LA 노선을 주 5회 운항하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대형기 2대를 더 들일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슬롯제공은 국내외 경쟁당국이 경쟁환경 복원을 위해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정조치”라며 “추후 신규 항공사의 운항 유지 여부에 따라 국내외 항공사들에게도 슬롯 취득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양사의 합병 과정에서 운수권이 속속 외항사에 넘어가게 되면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와 항공권 가격 인상 등 소비자 편익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두 개의 국적항공사가 있을 때보다 항공편 총량이 줄어들게 돼 국적기 이용이 어려워지고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LCC들도 중국이나 유럽 노선 등 반납 예정 노선을 희망할 경우 도전할 수는 있다지만 외항사와의 경쟁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이후 국적기의 취항 노선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이 과정에서 비행기표 가격 인상도 예상된다”면서 “당장 가격을 건드리지 못해도 마일리지 등 비가격적 부분에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