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의 ‘노동 윤리 몰락에 관한 일화’를 원작으로 하는 독일의 어린이책 ‘현명한 어부’의 한 장면. 한가로이 쉬고 있는 어부에게 관광객이 다가가 “놀지 말고 물고기를 잡으라”고 충고한다. 독일 칼 한저 출판사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1972년 쓴 ‘노동윤리 몰락에 관한 일화’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미국 사업가와 멕시코 어부 등으로 각색돼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짧은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 속 관광객처럼 성공을 이루고 난 뒤에야 햇살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며 산다. 쉬거나 낮잠을 자면 스스로도 비생산적이고 게으르다고 여긴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휴식은 더 많은 성취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피로를 푸는 것부터 산책, 대화, 취미 생활 등을 통해 정신적 만족감을 얻는 모든 순간을 휴식이라고 할 수 있다. 휴식을 취하고 업무에 복귀했는데도 여전히 정신이 멍하고 피로감이 남아 있다면 잘 못 쉬었다는 증거다. 어떻게 해야 ‘잘’ 쉴 수 있을까?
로버트 사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교수가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개코원숭이를 관찰하고 있다. 사폴스키 교수는 원숭이의 혈액을 채취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측정했는데, 서열이 낮고 자기결정권이 없는 원숭이일수록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유튜브 화면 캡처
로버트 사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교수는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30년간 개코원숭이를 관찰하며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를 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우두머리 수컷에게 통제당하는 서열 낮은 수컷 원숭이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우두머리 수컷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됐다. 자기 삶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눈치 보며 사는 서열 낮은 원숭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많은 질병에 걸렸고 결과적으로 수명도 짧았다.
안타깝게도 인간도 마찬가지다. 원할 때 쉬지 못하고 눈치 보며 쫓기게 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될 수밖에 없다. 1~2시간가량 업무에 열중했다면 10분이라도 짧은 자유시간을 반드시 지키는 등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두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는 왕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내라는 왕의 지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골몰하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던 도중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알아냈다)”를 외친 일화로 유명하다. 이렇듯 문제의 해답은 머리를 식히는 도중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Freepik(@brgfx)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2018년 자연의 소리가 인지 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먼저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시각과 청각의 집중력이 필요한 사전 인지능력 테스트를 했다. 그런 다음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파도, 비, 귀뚜라미, 바람 소리가 녹음된 자연 음향을 들려줬고, 나머지 그룹에는 자동차 경적, 기계 동작 소리, 카페의 백색소음 등 도시와 관련된 음향을 각각 15분간 들려줬다. 그런 뒤 다시 인지 능력 테스트를 치르게 했다. 그 결과 도시 음향을 들은 참가자들은 점수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자연 음향을 들은 참가자들의 점수는 사전 테스트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실선 그래프는 자연 음향을 들은 실험 참가자들의 사전, 사후 테스트 결과이고, 점선 그래프는 도시 음향을 들은 실험 참가자들의 사전, 사후 테스트 결과이다. 자연 음향을 들은 이들의 테스트 결과가 도시 음향을 들은 이들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자동차 경적: 자연의 소리가 인지 능력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발췌.
마크 버만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연은 다른 어떤 환경보다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므로 주의 집중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게 돕는다”며 “(사진을 보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자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이판=최고야 기자 best@naver.com
정신적 만족감을 높이는 휴식을 취하려면 심신의 이완뿐만 아니라 시간과 관심을 쏟아 몰입을 일으키는 도전적인 취미 활동이 필요하다. 긍정 심리학의 대가이자 몰입(flow)의 개념을 처음 역설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 ‘몰입의 즐거움’에서 “여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일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취미의 필수 조건은 너무 쉽거나 어렵지 않은 ‘적당히 도전적인’ 난이도여야 하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나서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취미 활동도 일하듯 무조건 열심히 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오티움(라틴어로 ‘여가’라는 의미)’의 저자 문요한 원장은 “좋은 여가 활동의 포인트는 ‘기쁨’”이라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자랑하거나, 살을 뺀다거나,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활동은 좋은 취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취미로 삼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면 자기 탐색 과정이 먼저다. 문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몰입했던 경험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서 잊고 살아왔던 것은 무엇인지, 나와 비슷한 기질과 환경을 가진 가족들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객관적으로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나의 여러 능력 가운데 비교적 잘 할 수 있고, 흥미를 느끼는 영역을 찾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