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79조6000억 원, 수익률로는 8.2%의 손실을 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2020∼2022년 3년간 연금으로 받은 돈이 88조 원이니 거의 3년 치 수령액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작년에 글로벌 주식·채권시장이 모두 좋지 않은 탓이 컸다. 연금 같은 장기투자에서 1년 수익률만 보고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최근 10년 연평균 수익률도 4.7%로 썩 좋지 않다는 게 문제다. 수익률 1위 캐나다(9.6%)는 물론이고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일본 공적연금(5.3%)보다도 낮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점점 앞당겨지는데 곳간이 더 빠르게 비워질까 우려가 크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저조한 데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낮은 것도 한몫한다. 중기 자산 배분, 연도별 운용계획, 기금 운용지침 등을 심의·의결하는 컨트롤타워이지만 정작 투자 전문가는 찾아볼 수 없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 6명, 사용자 대표·근로자 대표 각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회의록을 보면 황당한 발언도 많다. “돈 굴리는 문제는 이해하기 어렵다” “파생상품 투자하겠다니 겁이 난다”고도 한다.
▷우수한 운용 인력을 확보하기 힘든 구조도 문제다. 민간 금융회사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아 인력 유출이 심각하다. 지난해 네 차례 100명 이상 채용을 했는데도 정원 380명을 채우지 못했다. 경험이 풍부한 팀장급이 빠져나가면 신입으로 메우는 식으로 운용업계의 ‘인력 양성소’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자산군별 칸막이를 낮추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선진 연기금과 달리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전통적 자산 배분 전략에 갇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대해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평생 꼬박꼬박 낸 연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느냐다. ‘집사’인 국민연금의 최우선 목표는 주인인 국민의 노후자금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수익률이 1%포인트 오르면 기금 소진을 5년, 길게는 8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정부와 정치권 입김을 차단하고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운용체계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다. 2230만 명의 가입자가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