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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석유 4.5배” 7광구, 2년뒤 日독식 우려… “정상회담서 다뤄야”

입력 | 2023-03-04 03:00:00

박정희때 韓日 공동개발협정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천연가스와 상당량의 석유가 묻혀 있을 것이란 조사 결과로 대한민국을 설레게 했던 제주도 남쪽의 대륙붕 ‘7광구’. 한국과 일본이 1978년 한일 공동개발구역(JDZ) 협정을 맺고 함께 석유 개발을 추진했다가 1980년대 중반 일본이 손을 떼면서 잊혀졌던 ‘7광구’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7광구에 대한 한일 공동개발 협정이 2025년 사실상 종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더 늦기 전에 7광구 공동개발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르면 이달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7광구 공동개발을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7광구, 이제 일본으로 넘어가나

1968년 유엔 산하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는 ‘동중국해 대륙붕에 엄청난 양의 석유 자원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산유국의 꿈’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박정희 정권은 1970년 6월 7광구의 영유권은 한국에 있다고 선포했다. 이후 석유를 탐사할 여력이 부족했던 한국은 1978년 6월 7광구를 ‘한일 공동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기한은 50년 뒤인 2028년 6월까지로 ‘탐사와 시추는 반드시 양국이 공동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하지만 일본은 1986년 “경제성이 없다”며 돌연 개발 중단을 선언했고, 단서 조항에 묶여 이도 저도 못한 채 7광구는 수십 년간 방치됐다.

이제 7광구 공동개발 협정은 발효 50년이 되는 2028년 6월이면 종료된다. 종료 3년 전인 2025년 6월부터 양국 어느 쪽에서든 조약 종료를 통고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협정 만료까지 2년여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다양한 접촉 계기를 활용해 일본 측에 협정 이행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면서도 “(해당 사안은) 현재 진행 중인 민감한 외교 관련 사안이라 구체적인 협의 내용을 밝히긴 힘들다”고 전했다. 해양수산부는 “7광구에 대한 한일 공동개발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본이 협약 종료를 통보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법 전문가들 사이에선 협정이 종료되면 이후 7광구 관할권은 대부분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온다. 1982년 유엔 국제해양법이 채택되면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란 개념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후 대륙붕 소유권을 어느 나라와 연결됐는지 따지지 않고, 양안 간 중간선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국제 판례들이 축적되고 있다.

협정 체결 당시까지만 해도 해저 지형의 자연적 연결이 경계 획정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아 7광구 대륙붕과 연결돼 있는 한국에 유리한 분위기였다. 반면 EEZ 경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7광구의 90% 이상은 일본 수역 내에 위치한다. 협약이 종료될 경우 일본이 이를 바탕으로 7광구 대부분을 차지하려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해수부는 “EEZ를 설정한 한일 어업협정에는 대륙붕과 관련된 내용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 “경제적 가치도 높지만, 안보 면에서도 중요”
7광구의 경제적 가치를 정확히 추산하긴 쉽지 않다. 2004년 미국 매장량의 4.5배 규모의 석유가 묻혀 있다는 미국 측 보고서가 나왔지만 실증 조사를 바탕으로 하지 않아 신뢰도는 높지 않다. 가치를 가늠하기 위해선 실제 탐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7광구 탐사와 개발은 1986년 일본이 공동개발에 손을 떼면서 중단된 상태다. 단독 탐사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개발을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80년대 한일 공동탐사에서 소량의 가스가 발견됐다는 점, 1995년 7광구 해역에서 불과 800여 m 떨어진 곳에서 천연가스 9200만 배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춘샤오 가스전’이 발견된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안보적인 중요성도 있다. 동중국해 유전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이 향후 7광구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세현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협정 종료 후 중국이 7광구의 지분이 있다고 주장하며 인근에 해군을 배치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단순히 경제성 문제를 넘어 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 “3월 정상회담서 주요 의제로 다뤄야”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나서 7광구 개발 문제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르면 3월 열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7광구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제법 전공)는 “정상회담 등에서 공동개발 재개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 향후 국제 사법 재판 국면에서도 유리한 정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사실상의 협상 종료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선 그간 해오던 실무진 협상보다 더 높은 단계에서의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측의 공동개발 의지가 높지 않은 만큼 양자 간 외교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교수는 “(7광구는) 한일 관계를 뛰어넘어 동아시아 국제 관계, 나아가 미중 간 힘의 균형이라는 역학 속에서 풀어내야 하는 복잡한 문제로 번졌다”며 “동아시아 해양 개발에 관심이 높은 미국과 호주 등을 끌어들여 공동개발을 제안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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