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서열 2위 양회 끝으로 물러나 ‘성장’ 중시… ‘분배’ 시진핑과 이견 마지막까지 초라한 퇴장 예고 새 총리 리창, 習측근그룹 대표 주자
최근 퇴임을 앞두고 정부 부처를 순회하고 있는 리커창 중국 총리(가운데)가 직원들에게 환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외신들은 리 총리의 고별인사 영상이 중국 당국의 검열을 피해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 출처 웨이보
중국 권력서열 2위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에서 약 54분의 업무 보고를 끝으로 사실상 물러났다. 전국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합쳐 부르는 ‘양회(兩會)’가 13일까지 열리는 가운데 이 기간 중 이미 후임자로 내정된 리창(李强)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총리에 공식 취임하면 리 총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리 총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전 주석직을 놓고 경쟁했다. 시 주석이 집권 후 1인 지배 체제를 강화하자 ‘유령 총리’로 불릴 만큼 10년 내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특히 당국이 퇴임을 앞둔 그의 고별인사 영상까지 검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마지막에도 초라한 퇴장을 하게 됐다.
● 환대받는 리커창 영상 검열
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리 총리가 국무원, 재정부 등 정부 부처를 돌며 고별인사를 하는 각종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삭제되는 등 검열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살아남은 영상은 당국의 검열 체제를 뜻하는 ‘만리방화벽’ 외부에서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 총리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으로,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시 공청단 출신인 후진타오 전 주석의 총애를 받았고 경제통답게 ‘성장’을 중시했다. 그러나 ‘분배’를 우선시한 시 주석은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살기)’ 등을 내세워 기업 활동을 사사건건 규제했고 리 총리의 존재감은 옅어졌다.
2020년 시 주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샤오캉(小康·의식주 걱정 없이 풍족) 사회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리 총리는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9만 원)에 불과하다”며 섣부른 목표라고 맞섰다. 이처럼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던 리 총리지만 마지막 업무 보고에선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등 시 주석을 14차례 입에 올리며 소신 발언을 자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고별인사마저 검열 대상에 올랐다는 점은 ‘리커창 색채’를 완전히 지우려는 당국의 의도를 보여준다. 후 전 주석 또한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지난해 10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 도중 진행요원에게 끌려나가듯 퇴장했다. 당국은 이 영상과 사진도 모두 삭제했다.
● 中엘리트 ‘충성 경쟁’ 강화
새 총리에 오를 리창은 시 주석의 측근 그룹 ‘시자쥔(習家軍)’의 대표 주자다. 시 주석과 마찬가지로 상하이 당 서기를 지냈다. 지난해 상하이가 중국 31개 지방정부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시 주석의 절대 신임을 바탕으로 2인자에 올랐다. 양회 기간 중 수뇌부의 눈에 들려는 전국 대표위원들의 경쟁도 한창이다. 특히 저출산에 관한 각종 이색 제안이 넘쳐난다. 한 위원은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질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하루 근무시간을 8시간 이하로 제한하자고 했다. 다른 위원은 미혼 부모의 출생신고를 허용하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