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징용해법 합의] 한일, 징용해법 오늘 발표… 양국 재계 ‘미래청년기금’ 조성 日정부 “日기업들 기금 자발적 참여 열려 있다” 발표 예정 피해자 배상은 한국 기업 낸 돈으로 ‘3자 변제’… 논란 불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과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경단련(經團連)이 ‘미래청년기금’(가칭)을 공동 조성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상 책임이 있는 일본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이 이 기금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양국 정부가 가닥을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일 우호 증진에 공감하는 일본의 대기업 등 일반 기업들의 경우 양국 재계가 조성하는 공동 기금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조성하는 기금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안도 열어놓고 양국 정부가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6일 한국 차원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발표한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원재단)이 포스코 등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입은 국내 기업 16곳이 출연한 자금을 활용해 피해자들에게 대신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안 등이 포함된다. 한국 정부가 해법을 발표하면 일본 정부도 같은 날 “일본 기업들이 (공동 기금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담긴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계승하겠다고 표명할 것이라고 정부 소식통이 전했다.
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양국 간 핵심 쟁점이었던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 문제는 한일 청소년 교류나 장학금 사업 등에 사용하는 미래청년기금에 피고 기업들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한일 청년과 미래 세대들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양국 경제계가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관련해선 기시다 총리가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포함된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 표명” 입장을 계승하겠다고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日 피고기업, 韓징용재단 참여 대신 ‘한일 미래기금’으로 우회
징용배상 해법 오늘 발표
한일 정부 ‘간접 기여’ 방식 공감대
‘日 일반기업, 韓재단 참여’도 협의
日, 피고기업 기금참여 언급 안할듯
韓 피해자측 이해-국민 공감 미지수
“양국 정부가 나름 한발씩 양보했다. (정부로서는) 최선의 결과는 아니지만,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다.”
정부 핵심 당국자는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합의가 안 됐다면 5월 이후로 협상이 길어졌을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의 최대 쟁점이었던 일본 피고 기업의 기여 방식을 둘러싼 양국 간 협의 결과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6일 미래기금 등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용인하는 방침을 밝히되 피고 기업의 기금 참여 여부는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고 기업이 기금 조성에 기여한다 해도 ‘피해자에 대한 배상’ 성격이 옅은 만큼 피해자와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이 거셀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日, 피고 기업의 지원재단 기금 참여 거부
복수의 일본 소식통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 등 피고 기업은 지난해 11월경만 해도 피해자에 대한 직접 배상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내부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는 한일 정부가 배상 문제와 관련해 본격 협상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배상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게 배임이라는 등 이유로 피고 기업 내 주주들이 기업 측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지원재단을 통해 배상에 기여하는 방안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정부가 1월 국회에서 개최한 공개토론회에서 지원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안’ 윤곽을 발표했을 당시 일본 정부는 피고 기업이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름으론 변제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사를 강하게 전달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 산하 지원재단을 거치는 자체가 다시 ‘배상’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 피고 기업이 아닌 일본 일반 기업들 내부에선 자신들이 재판 당사자도 아닌데 지원재단을 통한 배상에 왜 참여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사죄 등에 대한 합의가 잘돼 순탄하게 진행되던 양국 간 협의가 이 시점에 교착 상태에 빠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3자 변제안 자체의 법적 쟁점들도 걸림돌이 됐다. 제3자 변제가 성립하려면 채무자, 즉 일본 피고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채무를 우선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은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도 수용하지 않았다. 일본 측이 기본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재단이 변제를 할 상황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 이유다. 아울러 지원재단이 법적 변제 자격을 얻으려면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요건이 성립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 피고 기업 참여해도 “배상 아니다” 논란 일 듯
이런 문제들을 우회하기 위해 피고 기업이 미래청년기금을 통해 기여하는 방식이 거론됐다는 것. 정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협상 마지노선은 피고 기업의 참여를 어떻게든 이끌어내는 것이었다”며 “다만 지원재단을 거치진 않겠다는 일본 측 의사가 워낙 강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래청년기금을 활용하는 방식이 피해자 측 이해를 얻어내고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이날 제3자 변제 해법 등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덮어주고 면해주는 합의”라며 “대한민국 외교사에 최악의 굴욕외교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