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안방 경기에서 공을 띄우고 있는 한선수(왼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한선수(38·세터)는 올 시즌에도 대한항공을 프로배구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직행하는 순항고도에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이 팀 기장은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36)이지만 한선수라는 항법사가 없었다면 대한항공은 이렇게 빨리 난기류를 뚫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이러면 러닝 세트 비율은 50.9%가 나옵니다.
V리그 역대 최고 블로커 신영선(왼쪽)을 발로 차고 있는 한선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국제배구연맹(FIVB)은 상대 블로커가 없거나 한 명인 곳으로 공을 띄운 경우를 러닝 세트, 두 명 또는 세 명인 곳으로 공을 띄운 경우를 스틸 세트로 구분합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그저 ‘세트 성공’ 횟수를 기준으로 세터상 수상자를 결정하지만 따로 기록은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올 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를 기준으로 러닝 세트를 받아 상대 코트에 공격 타구를 날렸을 때 공격 효율은 0.484, 스틸 세트 상황에서는 0.323입니다.
남다른 러닝 세트 비율을 자랑하는 한선수
따라서 러닝 세트 비율이 높을수록 더 좋은 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선수는 남자부 7개 팀 주전 세터 = 세트 기록이 가장 많은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40%가 넘는 러닝 세트 비율을 기록 중입니다.
또 1위 한선수와 2위 하승우 사이 차이가 하승우와 최하위 이호건(27·삼성화재) 사이 차이(9.6%포인트)보다 더 큽니다.
어지럽게 꼬인 실타래
이즈음에서 ‘대한항공은 서브 리시브가 좋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 리시브가 좋아서 러닝 세트 비율도 높은 거라면 위에 나온 그래프에서 옆으로 나란히 가는 선이 많아야 합니다.
실제로 선이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건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스포츠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올 때는 보통 ‘능력’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현대 배구’ 상징으로 손꼽히는 (콩글리시) 퀵오픈
한선수가 특히 능력을 발휘하는 건 ‘퀵오픈’을 세팅할 때입니다.
한선수는 전체 퀵오픈 세트 가운데 43.1%를 러닝 세트로 띄웠습니다. 리그 평균(26.8%)보다 60.8% 높은 비율입니다.
현재 남자부 평균 공격 성공률은 51.4%이고 이보다 60.8% 높은 기록은 82.7%입니다.
이 정도로 한선수는 공격수가 편하게 퀵오픈을 날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겁니다.
작전 사진을 내고 있는 한선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물론 한선수가 빼어난 기록을 남긴 데는 대한항공에 좋은 공격수가 많다는 점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그런데 좋은 공격수를 만드는 건 바로 좋은 세터입니다.
나쁜 세터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 동안 좋은 세터가 그만큼 칭찬받는 일이 드문 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한선수는, 데이터가 한 번 더 증명하듯, 좋은 세터 중에서도 블로킹에 ‘개방적인’ 정말 좋은 세터입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