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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청년 탈모’ 지원 ‘선심성 정책’ 논란

입력 | 2023-03-07 03:00:00

서울시의회, 탈모지원 조례 ‘보류’
“세대 갈등” vs “자존감 하락”
서울 성동·충남 보령 등 자체 지원
전문가 “심각할 때만 지원해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들에게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선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관련 조례 심사를 보류했지만, 서울 성동구와 충남 보령시 등 일부 지자체는 이미 자체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취업·결혼 등을 앞둔 청년들이 탈모로 인해 자존감이 하락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각에선 “희귀·난치병 환자에 대한 지원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세대 갈등 유발” vs “청년 자존감 높여야”
3일 열린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균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서울시 청년 탈모 치료 조례안’을 두고 여야가 팽팽히 맞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소라 시의원이 발의한 이 조례안은 시에 3개월 이상 거주한 19∼39세 청년에게 탈모 치료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와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이날 조례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철희 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청년세대에게만 치료비를 지원하면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청년 정책의 우선순위는 일자리와 주거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영철 시의원도 “의료보험 비급여 대상에 여드름, 치아교정, 라식도 있는데 탈모만 지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 시의원들은 탈모로 청년들의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임만균 시의원은 “청년들은 취업, 결혼 문제 때문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며 “탈모가 있으면 (청년들의) 자존감이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당 서준오 시의원도 “청년 탈모가 심해지면 자존감이 하락하고 대인기피증과 우울증도 생긴다”고 했다.

결국 이날 전체회의에선 ‘심사 보류’ 결정이 났다. 국민의힘 소속인 도문열 시의회 도시계획균형위원장은 “(청년 탈모 지원이) 조례를 만들어서까지 지원할 사항인지 좀 더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 성동구·보령시 등 자체 지원 나서

청년 탈모 치료를 지원하는 지자체는 점차 늘고 있다. 서울 성동구는 지난해 5월 청년 탈모 지원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한 데 이어 올해부터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원 대상자는 성동구에 주민등록을 두고 3개월 이상 거주하면서 의사로부터 탈모증 진단을 받은 39세 이하 청년이다. 1인당 약제비 명목으로 연간 20만 원씩을 지원한다.

충남 보령시도 올해부터 시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을 둔 49세 이하 탈모증 환자에게 1인당 최대 200만 원(생애 1회)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도 지난해 말 관련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해 관련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다른 질병을 앓는 환자 단체들은 “선심성 사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장은 “탈모보다 더 심각한 희귀·난치병 질환자도 의료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탈모 치료비를 지원한다는 소식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상태가 정말 심각한 일부 원형 탈모 환자에 한해 가발 등을 지원하는 게 맞다”며 “경증 탈모에까지 치료비를 지원하는 현재의 안은 표를 위한 선심성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