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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커지는 ‘이대남’ 위기론[특파원칼럼/김현수]

입력 | 2023-03-07 03:00:00

남성 학력 저하-고용 포기 늘면서 대두
韓도 새 ‘남성성’ 확립-지원책 고민해야



김현수 뉴욕 특파원


‘남성이 출산율 저하의 간과된 요인인가?’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NYT)를 읽다 이 같은 칼럼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미 출산율은 1.7 수준으로 한국(0.78)에 비해서는 매우 높지만 2007년 2.1에서부터 계속 하락세여서 미국 내 우려가 크다. 청년층 경제적 위기를 비롯해 출산율 하락 원인으로 제시되는 많은 요인 중에서 NYT는 남성에 주목한 것이다.

남성을 중심에 두고 보면 출산율은 더욱 떨어져 있는데 이는 ‘남성 위기론’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었다. 남성 위기론은 미 사회 전반의 교육과 고용 그리고 심리적 건강 측면에서 남성이 뒤처지는 것을 말한다. NYT에 따르면 2006∼2010년 미 40세 남성 4명 중 1명은 자녀가 없었다. 출산율 1.37(2020년)인 핀란드는 3명 중 1명꼴로 자녀가 없었다.

베가르 시르베크 미 컬럼비아대 교수(인구경제학)는 “출산율에 미치는 남성 요인 연구가 적다”고 전제하면서도 “여성은 자신보다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은 파트너를 원하지만 그에 ‘적합한’ 남성은 줄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로 고군분투하는 남성을 지원해 교육과 소득 수준을 높이는 것도 출산율 증가의 중요 요인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리처드 리브스 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 펴낸 책 ‘소년과 남성에 관하여’도 남성 위기에 집중해 관심을 모았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 어린이 중 학교에 적응할 만한 조건을 갖춘 여아 비중은 남아보다 14%포인트 높았다. 남녀 간 학력 격차는 점점 커져 고등학생이 되면 성적 상위 10% 내 3분의 2가 여자, 하위 10% 내 3분의 2가 남자였다. 대학 남녀 성비는 4 대 6으로 벌어졌고 2019년 남성 25∼34세 고용률은 40여년 전과 비교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가족 내 지위 상실, 자살 및 약물중독 확률도 압도적으로 남성이 높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남성이 강세를 보이는 제조업은 하락하고 여성이 강세를 드러내는 서비스업은 상승하고 있으며, 가부장제 변화 등으로 1020 남성의 동기 부여가 떨어지고 있다. 저자는 자제력과 연관된 전전두엽 피질 발달 속도가 늦은 남아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늦춰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 책은 진보 성향 저자가 남성 문제를 들고나와 화제가 됐다. 저자는 진보는 여성 문제에만 집중하고, 보수는 가부장제 문화 부활만 외치는 바람에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남자 청소년과 ‘이대남(20대 남자)’을 위한 정책이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에게 과학기술 분야 장학금이 집중되듯 남성에게도 상대적으로 진출이 적은 교육 및 복지 분야 장학금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남성성’ 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남성 위기론은 젠더 갈등이 극에 달하고 출산율은 바닥을 치는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한국은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크고 고위직 여성 비중이 매우 낮아 성평등 지수도 바닥권이어서 한국판 남성 위기를 부르짖기는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렇다고 간과하기에는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하는 현실을 무시하는 일이 될 터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나 여성 차별을 바로잡는 것과 어려움에 처한 남성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상충되지만은 않는다. 남성 육아휴직 확대, 부양 의무 압박을 덜어주는 문화 등은 남녀평등 제고나 출산율 증가의 주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젠더 갈등은 제로섬 싸움이 아니라는 의미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