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부인 콘스탄체의 새 남편이 되어 모차르트의 삶을 연구한 덴마크 외교관 니센.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이 1797년 하숙을 옮겼을 때 그는 36세의 오스트리아 주재 덴마크 대사 대리였고 4년째 빈에서 일하고 있었다. 새 하숙집에는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과부 여주인과 두 아들이 있었다.
한 해가 지나 니센 대사는 하숙생 생활을 면하게 된다. 두 아이의 ‘아빠’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의 파트너는 7년 전 남편을 잃은 뒤 하숙업 외에 전남편의 유품을 팔며 생계를 잇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니센은 음악적 안목이 상당했음에 틀림없다. 그가 유품 판매의 일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남겨둘 것이며 어떻게 협상할 것인지를 그는 주의 깊게 판단했다. 함께 살게 된 사람은 콘스탄체 모차르트였고 그가 판매한 주요 유품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쓴 악보와 그 저작권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1809년, 동거 11년 만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3년 뒤 니센의 대사 임기가 끝나자 코펜하겐으로 이사해 8년을 살았다.
니센이 공직에서 은퇴하면서 두 사람은 새 거처를 모색했다. 니센의 고향인 유틀란트반도일까? 콘스탄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독일 만하임? 두 사람은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모차르트의 전기를 쓴다는 계획이었다.
부부는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을 찾아갔다. 난네를은 모차르트와 가족들이 주고받은 편지 수백 통을 건넸다. 그 밖에도 니센은 모차르트를 알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만났다. 가장 중요한 인터뷰 대상이 부인 콘스탄체였음은 말할 나위 없다.
니센은 모차르트 전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1826년 잘츠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기는 콘스탄체와 포이어슈타인이라는 후속 저자에게 맡겨져 1829년 출판됐다. 이 책은 모차르트 생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 전기로 꼽힌다.
니센이 세상을 떠나고 15년 뒤인 1841년, 콘스탄체와 두 아들은 ‘종교음악과 콘서트의 세련된 취향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음악 협회 및 모차르테움’을 설립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대작곡가의 고향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 콘스탄체와 니센의 결정이 큰 나무로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관의 음악교육 과정은 오늘날 명문 음대로 자리 잡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대의 기원이 됐다. 1880년에는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이 설립돼 모차르트 연구와 도서관 운영, 관련 유적의 관리를 맡게 됐다. 초기부터 활발하게 콘서트 활동을 펼친 오케스트라는 1908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로 독립 출범했다.
콘스탄체와 니센 부부의 의지가 싹을 틔워 탄생한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1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피셰르 아담의 지휘로 내한공연을 연다.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레이 첸이 협연하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기자는 모차르트와 니센 가족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잘츠부르크를 올해 8월 찾아간다. 음악계의 악동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 등 두 개의 잘츠부르크 축제 프로그램을 감상하고, 이 외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 오페라 축제에서 푸치니 ‘토스카’를,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3번을 감상한다. 세 나라에서 보는 알프스의 장관이 함께한다. 함께하실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투어동아’ 검색어를 입력해 보시길 권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