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동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1년 전과 비교해 7.5% 줄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연속 감소세다. 수출 부진은 반도체의 부진 때문이다.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000만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42.5% 줄었다.
여기에 반도체 패권 장악 시도에 나선 미국은 노골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압박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따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 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단,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일정 기준 이상 초과 수익은 반납해야 하고 반도체 생산 및 연구기술을 미 정부에 공개할 경우 보조금을 우선 지원한다. 쉽게 말해 반도체 생산 기밀을 공개하는 등 미국 뜻대로 움직여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 입법권 없는 국회 첨단산업특위
“첨단산업 기술력은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넘어 미래 경제, 안보 패권에 대한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그러나 첨단산업특위는 닻을 올리기도 전 잡음이 일었다. 18명의 위원 중 그간 국회에서 반도체 관련 입법을 주도해 온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으로 반도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양 의원은 특위 신청서를 냈지만 빠졌고, 그 자리에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들어갔다. 광주 광산구청장,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낸 민 의원의 반도체 관련 경력은 없다.
이런 인선을 두고 여권 관계자는 “국회의장실은 상임위 안배 균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민주당의 ‘정치적인 뒤끝’ 때문이라는 걸 야당 의원들도 알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 입법 독주에서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양 의원이 민주당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당시 양 의원은 검수완박 입법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민주당은 부랴부랴 민 의원을 ‘위장 탈당’ 시켜 양 의원 대신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 배치했다. 결국 민 의원이 검수완박 입법에 찬성을 표하면서 안건조정위는 무력화됐다. 민주당 의원들조차 “대한민국의 존망을 다투는 산업들을 우리가 만들어내지 못하면, 육성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한 첨단산업특위에 정파적인 고려가 개입된 것.
게다가 첨단산업특위의 가장 큰 문제는 입법권, 즉 법을 만들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며 부랴부랴 특위는 만들었지만, 정작 여야가 핵심적인 권한인 입법권은 특위에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첫 회의에서 “실제로 입법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특위가) 그냥 보고서 하나 내고 끝나버리고, 상임위로 올라가서 저희가 낸 보고서가 제대로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우려를 표했고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도 “특위 입법권에 대해서는 (이 의원과) 같은 입장이다”라고 했다.
첨단 산업을 대하는 국회의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는 장면은 또 있다.
● 1월도, 2월도 넘긴 ‘K칩스법’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이같이 추궁했다. 이날 회의에서 추 부총리는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과 관련해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지만 돌아온 건 “대기업에 왜 특혜를 주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날 선 공세였다.
조특법 개정안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현재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앞서 기재부와 여야는 지난해 12월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6%에서 8%로 늘리기로 뜻을 모았고,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미국, 대만 등 반도체 경쟁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공제율”이라는 반도체 업계의 반발과 윤석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지금과 같은 개정안이 만들어진 것.
실제로 미국은 반도체 설비투자 비용의 25%를 세금에서 깎아준다. 삼성전자의 경쟁자인 TSMC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대만 정부는 연구개발(R&D)비용의 25%, 설비투자 비용의 5%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있다. 두 나라가 이런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건 경제와 안보가 뒤섞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낸 조특법 개정안은 1월도, 2월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3월 국회가 여야 간 대치로 파행할 가능성이 커 3월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물론 민주당의 지적처럼 지난해 입법 과정에서 세수(稅收)만 생각하고 안일하게 세액공제율을 줄인 기재부도 문제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도 “의석수가 적다”는 핑계만 댈 게 아니라 야당이 원하는 걸 내주면서라도 협상에 임해야 한다. 민주당 역시 반도체 산업 지원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만을 위한 거라는 단편적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정책을 집행하는 건 행정부, 그리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몫이다. 하지만 정책 집행의 근거가 되는 법을 만드는 건 오로지 입법부인 국회만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먹구름이 정녕 걱정된다면 국회가 나서면 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내부 권력 투쟁을 향한 열정의 반의 반만 국가 경제에 쏟을 수는 없는 걸까.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