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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 한일관계’ 이젠 일본에 달렸다… “한국 ‘결단’에 용기 내야”

입력 | 2023-03-07 14:29:00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 News1 DB

정부가 한일 간 최대 갈등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의 해법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면서 향후 일본 측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부 피해자 측의 반발과 그에 따른 국내 여론 악화 가능성 등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이란 대의를 좇아 ‘일본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내놨다. 이와 관련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 측의 ‘성의’ 표시에 일본이 충분히 화답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양국관계를 더 ‘퇴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등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6일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은 앞서 예고됐듯,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지난 2018년 10~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 일본 전범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 승소한 피해자들에게 판결금(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봤을 땐, 정부의 해법은 그간 일부 피해자 측에서 요구해온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참여’는 담보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해법 발표에서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판결금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일본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다.

그러나 일본 측이 그간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온 점을 감안할 때, “이 판결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일본 피고 기업들의 직접적인 배상 참여’는 추후에라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게 외교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일본 측은 그동안의 협의 과정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리 외교당국 일각에선 ‘일본 피고 기업들의 배상 참여 등이 확실히 담보될 때까지 해법 발표를 미루자’는 등의 ‘속도 조절론’도 제기됐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과 그에 따른 일본 측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 등이 이어지면서 지난 수년간 경색돼온 한일관계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 또한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기억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구성원들이 6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2023.3.6/뉴스1

일본 정부는 우리 측의 이번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한 양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小淵)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할 것을 확인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또 우리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뒤 일본발(發) 수출규제 강화조치의 원상 복귀를 위한 협의를 예고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뒤 이어진 일련의 움직임은 이미 해법 논의과정에서부터 예견돼왔던 것이란 점에서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오히려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와 관련해 “현재 일본이 굉장히 미온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우리 정부의 ‘결단’과 대등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린 이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도 7일 보도된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의 이번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제시 등 결정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또한 (한일 간) 과거사에 대해 적절하게 반성하는 정치적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외교가에선 이르면 이달 중순 이후 일본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의 한일 외교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측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발신하지 못한다면 관련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 미 대사대리도 VOA 인터뷰에서 “기시다 정권이 리더십을 보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한국 측에) 화답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이 마련한 ‘돌파구’도 강력한 국내 비판에 직면해 무산될 수 있다”며 “그러면 한일관계도 수년 이상 퇴보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미일 3국 협력 강화 전망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전날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뒤 성명을 통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번영하는 한일 국민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중대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양국의 조치가 완전히 실현되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 대한 우리 공동 비전을 지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