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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코파친스카야 “음악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는 것”

입력 | 2023-03-08 10:01:00

‘내한’ 바이올리니스트 코파친스카야 인터뷰




‘강렬하다’ ‘극단적이다’ ‘짜릿하다’ ‘장난스럽다’ ‘철두철미 개성적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46·사진)에게 따라다니는 세계 음악 평단의 수식어들이다. 그의 연주는 예측할 수 없는 색깔로 유명하다. 주체할 수 없이 ‘급발진’해 극단의 속도로 클라이맥스를 폭발시키는가 하면, 의외의 유머 코드로 객석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죄르지 쿠르탁, 에사페카 살로넨, 페터 외트뵈시 등 이 시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그에게 작품을 헌정해 왔다. 현대음악 공연에서는 직접 노래에 나서기도 한다.

바이올린계의 혁신자이자 이단아로 불리는 그가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선다. 10,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잉고 메츠마허 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10, 11일 서울시향과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을 협연하는 몰도바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     사진 출처 코파친스카야 홈페이지




―당신은 낯설거나 새로운 곡, 또는 기존의 곡도 ‘새롭게’ 표현하는 것에 노력해왔죠. 음악에서 ‘새로움’이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습니다.

“새로움보다는 작곡가와 작품, 연주자 사이의 개인적인 만남을 생각합니다. 새로운 작품을 연주하면 작곡가와 함께 일하게 되죠.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도 ‘게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음악들의 작곡가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의 관객은 지금과 다르기도 하죠.

몰도바에서 어린시절을 보낼 때 조부모님은 소련의 정치적 선전을 믿지 않으셨어요. 우리는 가치와 존엄성에 대해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성경을 깊이 읽으면 숨겨진 의미가 항상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음악도 음표와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 후반부에는 독일 지휘자 잉고 메츠마허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5번을 들려준다. 코파친스카야와 메츠마허는 20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리게티의 협주곡을 협연한 바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협연 당시 만족했는지, 지휘자 메츠마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작품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도 메츠마허의 지휘로 힘들이지 않고 기적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와 다시 연주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설렙니다.”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은 즉물적이고 강렬하다는 점에서 당신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1번 협주곡을 연주하신 하이라이트 영상이 있죠) 이 곡의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으신지요?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이 소련에서 실질적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작곡됐습니다.정치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집게’에 걸린 개인의 재앙을 표현합니다. 가학적인 폭군 스탈린과 소련 체제에 대한 거친 조소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녹음 계획 중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코파친스카야의 수상 경력은 그의 개성이 음악계에서 받는 평가를 증명한다.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와 함께한 베토벤 라벨 등의 음반으로 2009년 독일을 대표하는 음반상인 에코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래머폰 올해의 녹음상, BBC 뮤직매거진 상, 오푸스 클래식상 등을 휩쓸어 왔다. 2018년에는 세인트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죽음과 소녀’ 앨범으로 그래미상 실내악부문을 수상했다.

그의 개성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나 소프라노 바버라 해니건과도 곧잘 비교된다. 속된 표현으로 ‘똘끼’ 넘친다고 알려진 음악가들이다. 바로크 이전 음악과 오늘날의 음악까지 관심 범위가 넓다는 점도 쿠렌치스와 비슷하다. 2019년에는 쿠렌치스가 이끄는 악단 ‘무지카 에테르나’와 서울에서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무산됐다. 그는 “당시 한국에 가지 못한 게 굉장히 아쉬웠다. 딸이 K팝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에 같이 가려고 했었고, 딸은 믿을 수 없이 흥분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코파친스카야는 오늘날 친러시아 지역의 분리 독립 문제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구소련의 몰도바에서 태어났다. 구 동구권 붕괴와 함께 스위스로 건너가 베른 국립음대에서 명교사 이고르 오짐을 사사했다. 그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전쟁은 가장 끔찍한 일입니다. 이 전쟁의 잔인함과 어리석음이 참담하고 슬펐습니다. 제 고국도 큰 위험에 처해 있죠. 당국이 무기와 인명 피해가 아닌 평화적 협상으로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고국 몰도바에 대한 추억을 “아침 햇살, 봄향기, 포도밭의 향기, 전통음악과 춤, 전쟁과 점령의 상처, 농담과 유머, 친척들과 친구들의 환대와 따뜻함”이라고 표현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