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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한잔만 먹어도 생명 위험…‘한랭응집소병’ 아세요?

입력 | 2023-03-08 13:53:00


“한랭응집소병 환자들은 남들보다 냉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사계절 내내 두꺼운 양말과 덧신을 신습니다. 두꺼운 양말을 신으려고 1년 내내 큰 신발과 털장갑을 착용합니다. 어지럽고 숨이 차 일상생활이 어렵고 심할 때는 가만히 누워있어도 숨이 찹니다.”(64세 한랭응집소병 환자)

체온보다 조금만 낮은 온도에서도 암 환자 수준의 피로 및 신체적 고통을 받는 ‘온도 감옥’의 질환이 있다. 진단 후 5년 내 10명 중 4명이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면서 극희귀질환인 한랭응집소병이다.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8일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 아벤티스 코리아가 개최한 미디어 세미나에서 “혈액을 전공한 전문의도 평생 한랭응집소병 환자를 한 번도 못 볼 정도로 극희귀질환으로, 우리나라에는 100명 안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암도 아닌데, 5년 내 40%의 환자가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인 질환이다”고 말했다.

한랭응집소병(Cold agglutinin disease·CAD)은 적혈구 파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극희귀 자가면역 혈액 질환이다. 환자 몸 안의 한랭 자가항체에 의해, 정상 체온 미만에선 적혈구를 계속 파괴한다.

장 교수는 “우리가 숨 쉴 수 있도록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부족한 질환이 바로 빈혈인데, 빈혈의 대다수는 철분이 부족해서 적혈구를 못 만드는 철 결핍성 빈혈이다”며 “이와 달리 한랭응집소병은 적혈구를 만들어내지만 내 몸에서 한랭응집소라는 자가항체가 적혈구를 남의 것으로 인식해, 면역세포가 적혈구를 공격해 파괴하는 질환이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늘 극심한 추위를 느끼며, 설거지,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낼 때, 시원한 물을 마실 때 등 조금만 냉기가 있는 곳에서 적혈구 파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여름에도 선풍기, 에어컨 사용이 불가능해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

주로 빈혈, 극심한 피로 호흡 곤란, 혈색소뇨증과 같은 용혈 증상 및 손끝이 파래지는 말단 청색증, 레이노 현상 등 증상을 겪는다.

◆진단 후 5년 내 10명 중 4명 사망…심각한 질환

인구 100만명 당 약 1명에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며, 인구 100만명 당 기후에 따라 5~20여명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한랭응집소병에 대한 질병코드가 없어 환자 수 집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적은 환자 수만큼 잘 알려지지 않아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빈혈 및 혈전성 합병증을 유발하며 진단 후 5년 간 사망률이 3배 증가한다. 진단 후 생존여명은 8.5년에 그친다.

1999~2013년 덴마크 국립 환자 등록부에 등록된 인구를 대상으로 한랭응집소병에 진단된 환자군(72명)과 비(非) 한랭응집소병 인구(720명·60세 이상 인구 비율 76.39%)의 사망률을 비교한 연구 결과 환자의 1년 및 5년 사망률은 각 17%와 39%였다. 비교군의 3%와 18% 대비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사망 위험 평가를 위한 민감도 분석 시 진단 후 첫 5년간 사망률은 3배 높게 나타났다. 평균 생존여명은 8.5년에 그쳤다.

장 교수는 “진단 5년 후 환자 10명 중 4명 가량(39%)이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며 “암 사망률 그래프와 유사하다. 상당히 문제 있고 사회적 부담이 큰 질환이다”고 말했다.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혈전증으로 나타났다. 이 질환자의 혈전 발병률은 1000명 당 30.4명으로, 비 한랭응집소병 인구(1000명 당 18.6명) 대비 2배 높게 나타났다. 혈전색전증은 1년 사망률이 20%에 달하는 치명적인 합병증이다.

그는 “흔히 항응고제를 먹으면 혈전이 예방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병의 혈전증은 보체 그 자체, 응고시스템 등 3가지 경로로 생긴다”며 “항응고제는 응고시스템만 차단하고 나머지 두가지를 예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치료법 부재로 질병 관리 부담 증가

의료진도 잘 모를 정도로 질환 인지도가 낮은 점은 이 질환 진단을 어렵게 한다. 환자들이 한랭응집소병의 증상에 대해 몰라서 진단이 지연되거나, 진단 전까지 여러 번의 병원을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진단받게 되더라도 국내에는 한랭응집소병에 허가된 약이 없어 치료가 제한적이다. 환자들은 추위·냉기 피하기, 엽산 복용, 수혈 등 대증적인 치료로 유지하고 있다. 중증 빈혈을 동반한 한랭응집소병 환자 중 절반 가량은 증상 완화 및 생존을 위해 임시방편인 수혈에 의존해야 한다. 또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미허가 약제를 쓰며 미봉책으로 증상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사노피가 ‘수팀리맙’이라는 약을 미국, 유럽 등에서 유일한 치료제로 허가 받았으나 국내에는 아직 허가되지 않았다. 이 약은 용혈의 원인인 고전적 보체 경로를 선택적으로 표적하는 치료제다.

장 교수는 “치료제를 쓰면 큰 증상 없이 살 수 있지만, 못 쓰면 암도 아닌데 5년 내 40%는 사망한다”며 “희귀질환 패스트 트랙으로 국내에 진입하기 위해선 한랭응집소병 같은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어 “이런 질환은 사람들에 인지가 안 돼 희귀질환의 트랙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며 “희귀질환을 위한 콘트롤 타워를 두고 조직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