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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싫어” 절교선언… 아일랜드 내전이 떠오른 까닭은

입력 | 2023-03-09 03:00:00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15일 개봉
아카데미 작품상 등 9개 부문 후보
1923년 아일랜드 외딴섬의 절친
서로 원망하며 끝없는 싸움 그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주인공 파우릭(콜린 패럴·왼쪽)이 절교 선언을 한 친구 콜름(브렌던 글리슨)을 찾아가 절교한 이유를 따져 묻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매일 오후 2시면 함께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절친’이었다. 어느 날 친구는 “이제 네가 지겹다”며 절교를 선언한다. 왜일까. 이유를 몰라 친구에게 말을 걸지만, 돌아온 답은 “자네가 싫다”일 뿐…. 재차 대화를 시도하지만, 친구는 “한 번만 더 말을 걸면 내 손가락을 잘라 보내겠다”고 통보한다. 이 둘의 관계, 끝은 어딜까.

15일 개봉하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섬 이니셰린에 사는 두 친구 파우릭(콜린 패럴)과 콜름(브렌던 글리슨)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12일(현지 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1923년 아일랜드 본섬에서는 내전이 한창이지만 이니셰린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다. 파우릭의 일과는 소를 몰고 마을에서 가장 친한 친구 콜름과 펍에서 맥주를 한잔 하는 것이 전부다.

어느 날 콜름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때부터 파우릭의 하루는 ‘대체 왜?’라는 의문에 갇혀 엉망진창이 된다. 콜름은 파우릭을 아끼지만, 그와 더 이상 의미 없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콜름은 파우릭이 계속 곁을 맴돌자 손가락을 잘라 그에게 던져버린다.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싸움은 계속된다.

절교하자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콜름. 그의 행동만 보면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아일랜드 내전이 벌어진 1923년이란 점에서 둘의 대립은 아일랜드 내전과 오버랩된다. 영화는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들의 대립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의 지배를 인정하고 자치권을 얻자는 이들과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이들이 충돌하며 벌어졌다.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지만 이들은 서로 지독히 미워하게 됐다. 서로 물어뜯다가 종국에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만 남았다. 파우릭과 콜름의 끝나지 않는 싸움과 닮았다.

다소 멍청하지만 다정한 파우릭 역의 배우 콜린 패럴과 후세에 무언가 남기는 일을 중시하는 콜름 역의 브렌던 글리슨의 섬세한 연기는 몰입도를 높인다. 패럴은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유력 수상 후보로 꼽힌다. 영화 속 아일랜드의 절경도 관람 포인트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