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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베찌르개 나온 수양개유적은 구석기 테크노폴리스”

입력 | 2023-03-09 03:00:00

‘발굴 40주년’ 이융조 명예교수
충주댐 수몰지 수자公 설득해 발굴
석기 제작소만 49곳, 대량생산 추정
“中-日 등으로 퍼진 경로 파악해 슴베찌르개 로드 그리는 게 목표”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 전시실에서 6일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가 40년 전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가리키고 있다. 청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규격화된 슴베찌르개가 서로 다른 문화층에서 110점 가까이 나왔어요. 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했다는 얘기입니다. 수양개 유적은 구석기 시대의 테크노폴리스였습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제공

4만6000년 전 제작된 세계 최고(最古) 슴베찌르개(사진)를 비롯해 10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된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은 1980년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82·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가 이끄는 충북대 박물관팀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해 7월 21일 충주댐 수몰 예정지역 지표조사 중이던 조사팀이 이틀째 쏟아진 기록적 폭우를 뚫고 극적으로 발견했던 것.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에서 6일 만난 이 교수는 “배를 타러 가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돌아가려는데, 제자들이 ‘계속 가보자’고 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유적을 발굴해 후대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발견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구석기 연구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수양개 유적이 올해 발굴 40주년을 맞는다. 1980년 발견돼 3년 뒤 발굴한 수양개 유적은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구석기 유적으로 꼽힌다. 나머지 두 유적이 미국인에 의해 발견된 데 비해 수양개 유적은 처음부터 우리 발굴팀이 발견해 의미가 더욱 크다.

그러나 첫 발견 뒤에도 한동안 충북대 박물관의 잠정 발굴 대상 목록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교수는 1983년 3월 박물관장을 맡자마자 가장 먼저 수몰 위기에 놓인 수양개 유적 발굴을 추진했다. 그리고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를 지원하는 한국수자원공사를 4개월 동안 설득해 그해 7월 첫 발굴에 나섰다. 이 교수가 “수몰 전 반드시 발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충주댐 건설로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를 유적이다.

이 교수는 74세가 된 2015년까지 13차례 수양개 발굴을 이어갔다. 수양개 유적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됐지만 댐 수위가 낮아지면 발굴을 계속한 것. 그렇게 수양개에서 출토된 유물은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는 식민사관을 뒤엎었을 뿐 아니라 ‘미개하다’고 여겨졌던 구석기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이 교수는 “수양개 1지구에서는 석기 제작소만 49곳이 나왔다”며 “정교하게 정형화된 석기의 형태로 미뤄 대량 석기 생산 체계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양개 유적의 가치를 해외에 알리는 일에도 힘써 왔다. 1996년부터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까지 ‘수양개와 그 이웃들’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25차례 개최했다. 미국과 러시아, 폴란드 등 해외 대학과 기관에서 연 것만도 16차례다. 그동안 181개국에서 학자 486명이 참여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일까. 일본 국립후쿠오카박물관은 전시물 설명에서 ‘수양개 슴베찌르개가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 구석기 사냥 도구의 기원이 수양개 유적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나아가 ‘슴베찌르개 한반도 기원설’도 세계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40년을 수양개 유적에 바쳤지만 그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고 했다. 수양개 유적에서 제작된 슴베찌르개가 일본과 중국 등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간 경로를 파악하는 ‘슴베찌르개 로드’를 그리는 일이다. 이 교수는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도 현역”이라며 “유적의 가치를 밝히는 데 힘을 쏟고 싶다”고 했다.





슴베찌르개날 부분을 찌를 수 있게 가공한 마름모꼴 석기로 한반도 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도구. 자루에 꽂기 위한 뾰족한 부분을 일컫는 ‘슴베’와 ‘찌르개’를 합쳐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가 만든 학술용어다. 나무나 짐승 뼈로 만든 자루에 달아 사냥용 창 등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