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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 운전자 “브레이크로 알고 액셀 밟아”… 투표 행렬 덮친 트럭

입력 | 2023-03-09 03:00:00

4명 사망 16명 부상… 사망 늘수도
순창 조합장선거 투표소서 참변
경찰, 운전자 입건해 추가 조사
“고령 면허 반납 독려해야” 지적



순식간에 아수라장 8일 오전 10시 반경 전북 순창군 구림면 농협 주차장에서 1t 화물트럭이 인파를 덮쳐 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상자들은 이날 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피해를 당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고령 운전자의 차량 조작 미숙으로 판단하고 있다. 독자 제공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일인 8일 전북 순창군의 한 농협에서 1t 트럭이 투표를 기다리던 유권자들을 덮쳐 4명이 숨지고, 16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낸 70대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당시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했다”고 진술했다.



● “갑자기 우당탕…차량 덮치며 아수라장”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8일 오전 10시 반경 조합장 선거 투표소가 마련된 순창군 구림농협 주차장에서 흰색 1t 트럭이 갑자기 가속하며 투표를 위해 줄지어 서 있던 주민 수십 명을 덮쳤다. 트럭은 사고 후 10여 m를 더 이동해 인도까지 진입한 후에야 멈췄다.

트럭에 치인 70대 남성 2명과 70대 여성 1명, 80대 여성 1명이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중상자 4명과 경상자 12명 등 부상자 16명은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트럭에 치여 오른쪽 허벅지에 타박상을 입은 최모 씨(69)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줄을 서 기다리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의자에 앉아 계시라’고 말하는 순간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트럭이 사람을 덮쳤다”며 “잠시 의식을 잃었는데 깨 보니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고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고 돌이켰다. 인근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황모 씨(74)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가게 밖으로 나가 보니 트럭 아래 사람이 깔려 있었고 여러 명이 바닥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유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70대 사망자 A 씨의 동생(67)은 “회사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후 농사지으며 아픈 곳 하나 없이 지내던 형님인데 무방비 상태에서 너무 허망하게 가셨다”며 눈가를 훔쳤다. 피해자 중 다수가 고령자여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은 “중상자 4명 중 일부는 상태가 위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브레이크인 줄 알고 가속페달 밟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사고를 낸 트럭 운전자 이모 씨(74)를 임의동행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이 씨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고, 간이 검사에서도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이 씨는 경찰에서 “가축 사료를 사고 조합장 투표를 하러 왔다가 사고를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사료를 싣고 나오다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오인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며 “처음 사람을 친 후 차량을 바로 멈추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씨는 ‘너무 당황해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투표 안내원 3명이 있었지만 사고가 순식간에 벌어지는 바람에 막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최근 1년 내 운전면허를 갱신했고, 지금까지 큰 사고를 낸 적도 없다고 한다. 경찰은 이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뒤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날 사고가 고령 운전자의 부주의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날 경우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전국에 438만7358명이나 된다. 국토교통부 등의 노력에도 고령 운전자 중 면허를 자진 반납한 비율은 2.6%에 불과하다. 이달 초에도 치매 증상이 있는 70대 운전자가 경부고속도로를 7km가량 역주행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일이 있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육본부 교수는 “고령 운전자는 인지, 판단, 조작이라는 세 운전 능력이 모두 저하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책적 노력을 통해 70세 전후 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순창=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순창=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