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안 실효성] ‘주 69시간 근무’ 우려와 대안
정부가 6일 근로시간 개편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근로자들 사이에서 파장이 상당하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현재의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게 되면서 장시간 근로가 더 심해질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야간, 휴일, 연장 근로시간을 적립했다가 휴가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동아일보는 전문가들로부터 근로시간 개편안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들어 봤다.
① “주 69시간까지, 근로시간 길어질 것”→근로자대표제 정비해 근로시간 남용 방지
고용노동부는 현재 주(週) 12시간으로 제한돼 있는 연장 근로시간을 월, 분기(3개월), 반기(6개월), 연 단위로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6일 발표했다.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최대 주 69시간 근무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고용부는 “새로운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 반드시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가 서면 합의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7일 “분명한 것은 노사 간에 합의가 안 되면 이 제도를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근로시간을 결정해야 할 근로자 대표의 정의와 역할, 선출 절차에 대해서는 현재 규정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오히려 대표성 없는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다수 근로자의 의견에 위배되는 근로시간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조만간 다양한 직군의 근로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발표할 예정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적으로 정당성을 갖는 근로자 대표 선출은 근로시간제 개편의 선제조건”이라고 말했다.
② “근로시간 적립해 장기 휴가? 불가능”→정확한 근로시간 기록, 관리가 선제조건
이번 개편안에선 초과 근로시간을 휴가로 적립하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도 도입됐다. 정부는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쉬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다소 과장됐더라도 실제 근로자 휴가 사용률을 보면 우려할 만한 부분이 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 17개 시도의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 5580명의 연차 휴가 사용률은 76.1%에 불과했다. 현재도 초과근로를 하면 보상휴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보상휴가제)가 운영 중이지만 이 이용률도 낮다. 특히, 노동조합이 없거나 미약한 중소 규모 사업장의 경우 사측이 연장근로에 대해 수당 지급 대신 근로시간저축을 전면 도입하고 실제로는 휴가를 허락하지 않을 경우 임금만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초과 근로시간을 적립해 보상휴가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가 실질적으로 잘 운영되려면 구체적인 운영기준이 세워져야 하고, 무엇보다 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관리하는 시스템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시간을 의무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2년에서 3년간 보관하도록 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그런 의무가 없다.
③ “근로시간 유연화는 시기상조”→MZ 근로문화 확산, 제도 바꿔 대비해야
현재 한국의 근로 현실을 감안할 때 개편안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가 이번 개편안에 참조했다는 유럽의 경우 프랑스, 영국, 독일의 주 최대 근로시간은 48시간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밝힌 독일의 지난해 연간 근로시간은 1349시간으로 한국보다 500시간 이상 짧다. 이렇듯 유럽과 비교해 장시간 근로가 일상적인 한국에서 연장근로시간 단위를 섣불리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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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