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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감독은 신경과 의사, 선수는 지리 교사-소방관

입력 | 2023-03-09 03:00:00

직업 다양한 순수 아마추어팀
“함께 야구하며 자라 가족 같아”
12일 한국과 맞대결 승부 펼쳐
한국 투수 영상 틀며 전의 불태워



대부분이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된 체코 야구 대표팀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20개국 가운데 가장 약체로 꼽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 사진은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열린 이번 대회 유럽지역 예선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이긴 체코 선수들이 승리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체코 야구협회 트위터


체코는 ‘야구적 관점’에서 재미있는 나라다. 냉전 시대 다른 동구권 국가는 정치적인 이유로 ‘미제 스포츠’인 야구를 멀리했지만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1979년 전국 단위 야구 리그가 출범했다. 프라하, 브르노, 오스트라바 등 세 곳에 유럽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야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도 체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체코가 우여곡절 끝에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행 티켓을 따내자 미국과 아시아 라운드 중 어느 쪽에서 본선을 치르고 싶은지 MLB 사무국이 먼저 물었을 정도다. 파벨 하딤 체코 감독(52)은 “조금이라도 더 승산이 있는 쪽으로 가겠다”며 아시아 라운드를 선택했다. 그렇게 체코는 한국과 함께 B조에서 1라운드 경기를 치르게 됐다. 체코는 한국과 12일 맞대결을 벌인다.

물론 리그 출범이 빨랐다는 것과 수준이 높다는 건 다른 문제다. MLB에서 통산 815경기를 치른 에릭 소가드(37·내야수) 등 미국 야구 경험이 있는 세 명이 WBC 본선을 앞두고 합류한 건 사실. 그래도 체코 야구 대표팀은 기본적으로 ‘순수 아마추어’ 그 자체다. 직업도 따로 있다. 하딤 감독은 신경과 의사다. 고등학교 지리 교사이자 중견수인 아르노슈트 두보비(31)는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다. 모두 함께 야구를 하며 자랐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간절히 바라던 WBC 진출을 마침내 이뤄냈다”고 말했다. 무관중 경기가 익숙한 이들은 야구장 소음을 녹음해 훈련장에 틀어놓고 이번 대회를 준비해 왔다.

그렇다고 아주 ‘동네 야구’ 수준은 아니다. 체코 대표팀 ‘에이스’ 마틴 슈나이더(37)는 야구를 하지 않을 때는 소방관으로 일하지만 시속 145km짜리 빠른 공을 던질 줄 안다. 유격수로도 뛰는 그는 “야구 하는 내내 투타를 겸업했기 때문에 이번에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를 꼭 상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체코는 한국과 맞붙기 하루 전인 11일 일본을 상대한다.

슈나이더 외에도 이번 체코 대표팀 투수 세 명이 시속 145km 이상을 스피드건에 찍은 경험이 있다. 하딤 감독은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면 이 투수 세 명을 한 경기에 전부 내보낼 계획”이라며 “이번 대회를 통해 유럽도 세계 야구의 중요한 일부임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체코 타자들도 전광판에 한국 투수들의 투구 영상을 틀어놓고 훈련하면서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