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둔화→부진’ 악화된 진단 반도체 재고 급증 등 제조업 위축 한은 “금리인상에 소비 회복 제약”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을 ‘둔화’에서 ‘부진’으로 바꿨다. 한국은행은 다른 나라들보다 국내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빠르게 늘어난 데다 주택 경기도 더 나빠 주요국들보다 소비가 더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DI는 8일 내놓은 ‘3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 부진이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KDI는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경기 둔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통상 부진은 경기 회복세가 약해진다는 의미의 둔화보다 상황이 악화됐다는 뜻이다. 경기에 대한 우려를 한 단계 높이며 경기 부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경기 판단에 부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21년 4월 이후 처음이다.
KDI는 경기 부진 원인으로 제조업과 소비 위축을 꼽았다. 실제로 반도체 수출 부진이 길어지면서 올 1월 제조업 재고율은 120%로 상승했다.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를 덮쳤던 1998년 7월(124.2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도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은은 소비가 다른 나라들보다 더 크게 쪼그라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국보다 가계부채가 많고,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으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10∼12월) 국내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6.5%로 미국(101.2%), 독일(101.5%)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주요국보다 집값이 더 많이 떨어진 점도 소비 제약 요인이다. 국내 주택가격은 2020년 1월 100을 기준으로 할 때 2021년 10월 134.0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 1월 112.7로 15.9% 하락했다. 반면 미국은 지난해 6월 145.2까지 올랐다가 그해 12월 4.5% 소폭 하락했다.
한국 경제에 긍정적 요인인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은 아직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부진으로 고용 증가세도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기 둔화와 취업자 증가 폭 축소가 맞물리면서 체감되는 고용 둔화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