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경영권 놓고 ‘자본의 전쟁’ 가열되지만 팬 위한 긍정적 대안 제시나 우려 해소 적어 K팝 경쟁력 ‘팬덤-아티스트’라는 것 성찰해야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최근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케이팝 30년 역사에서 가장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하이브가 SM을 인수하든, 카카오가 SM을 인수하든 향후 케이팝 시장의 지배구조에 큰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하이브+이수만’ 연합이 승리할 경우 업계 1, 2위가 손을 잡는 초대형 엔터 연합이 탄생한다. ‘카카오+SM 현 경영진’ 연합이 승리할 경우 엔터계의 후발주자인 카카오는 단숨에 하이브를 위협하는 강력한 2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이브가 승리할 경우 케이팝 권좌에서 절대 반지를 끼게 되고, 카카오가 승리할 경우 케이팝 무림 강호에서 절대 검을 보유하게 된다.
SM 경영권 분쟁은 ‘가치의 전쟁’이 아닌 ‘자본의 전쟁’이다. 누가 더 많은 주식 지분을 갖는가 하는 싸움이다. 하이브는 주식 공개 매수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SM 현 경영진과 결별한 이수만은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고, 법원이 인용하면서 카카오도 주식 인수에 실패했다. 카카오는 포기하지 않고 주식 공개매수를 15만 원으로 올려 판돈을 키웠다. 하이브 역시 카카오의 공개매수를 어떤 형태로든 방해할 것이다. 끝없는 자본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왜 하이브와 카카오는 배수진을 치고 이 ‘숭고한’ 케이팝 전쟁에 참여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강력한 업계 2위, SM이 매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하이브 진영에서는 금은보화를 들고 제 발로 적진을 찾은 노장수를 환대 안 할 이유가 없다. BTS의 공백으로 고품격 콘텐츠 수급에 불안감을 느낀 하이브에 SM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반면 카카오는 양은 많은데 질은 떨어지는 고질적인 약점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다. 강력한 글로벌 콘텐츠를 확보해서 자사의 엔터 브랜드 가치 상승을 노릴 수 있다. 이 경영권 분쟁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 승수 효과를 낳기 때문에 승자의 전리품은 상상을 초월한다.
케이팝은 콘텐츠이자, 시장이자, 문화이다. 과연 그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몸집을 키운다고 해서 케이팝의 글로벌 경쟁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합병 후 레이블의 다양성이 사라져, 시장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경영권 ‘방어와 찬탈’에 온 힘을 탕진해 정작 아티스트의 복귀가 늦어지고, 창의적인 콘텐츠 제작에 힘이 실리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이번 분쟁이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이어서 수용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달 3일 열린 “SM 경영권 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특히 김수아 서울대 교수는 SM과 하이브 양사의 팬덤 플랫폼 비즈니스가 팬들의 자율적인 목소리와 연대를 위축시키는 점을 비판했다. ‘핑크 블러드’를 공유하는 SM 팬덤은 경영권을 둘러싼 자본의 전쟁 앞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이브나 카카오나 모두 팬들의 시선에서 어떤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팬들이 우려하는 지점들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지행 박사는 팬덤의 위치에서 이 분쟁을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SM의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팬덤 레거시”의 위기의식이 그것이다. 팬들이 아티스트와 함께 일군 오래된 SM 문화의 유산과 가치가 한순간에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깊은 슬픔”은 안중에도 없다. 하이브나 카카오나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콘텐츠 경쟁력의 원천이 ‘팬덤-아티스트’의 레거시에 있음을 깊이 성찰하지 못한다.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 케이팝의 시장과 자본은 콘텐츠 지식재산권(IP) 전쟁으로 이행하고 있다. IP는 상품이자 자본이기에 앞서 창작자의 “피. 땀. 눈물”이다. 고유한 레거시를 공유하는 팬덤의 문화적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팬보다 위대한 경영권, IP, 주식은 없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