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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스승과 화두[김창일의 갯마을 탐구]〈92〉

입력 | 2023-03-09 03:00:00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바닷가는 스산했고 샛바람은 짠 내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생선 장수 노파만이 인적 없는 다대포항 한쪽 모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불쑥 나타난 우리 일행의 왁자지껄한 소리에도 노인의 시선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중년 남성 너덧이 생선을 구입할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 가까이 가도 반응이 없었다. 좌판 위 생선을 흘깃 살폈더니 건조한 가자미류와 조기류가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물고기를 주제로 답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일행에게 조기와 가자미 종류를 설명한 후 노인에게 어떤 생선이 맛있는지 물었다. 그때까지 무심하던 표정에 화색이 돌더니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냈다. “이건 물가자미인데 맛이 싱거워서 물회나 식해로 많이 먹고, 참가자미는 미역국에 넣어도 좋고, 찌든 굽든 다 맛있어요.” 이어서 지느러미와 대가리를 제거한 가자미를 가리키며 종류를 맞혀보라는 고난도 퀴즈까지 냈다.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곧바로 끼어들어 한참을 설명했다.

가자미에서 완패한 나는 조기로 주제를 옮겼다. “참조기가 귀하니까 요즘은 조기와 비슷하게 생긴 생선을 외국에서 많이 들여오잖아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할머니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뒷지느러미에 침이 있어 침조기라 하는데 이렇게 생긴 조기는 다 외국산입니다. 저쪽 검은색 기운이 도는 건 세네갈에서 왔고, 이건 콩고, 뉴질랜드산은 맛이 없어요. 기니에서 잡힌 게 제일 맛있지. 명태를 러시아에서 죄다 수입하듯이 조기도 외국산 아니면 제사를 못 지내요”라고 말했다. 생선 고수와의 만남은 유쾌했다. 대화를 한참 나눈 후 생선 한 바구니를 구입하고 헤어졌다.

손에는 생선을 들고, 가슴에는 화두를 품고 답사를 마쳤다. “명태처럼 조기도 외국산 아니면 제사를 못 지내요”라는 길 위의 스승에게 들은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기는 우리에게 어떤 생선이기에 어획량이 급감하자 세계 곳곳을 뒤져서 모양과 맛이 비슷한 물고기를 들여오는 것일까. 아프리카 서부 연안에서 잡히는 ‘영상가이석태’는 물론이고 ‘세네갈가이석태’, ‘대서양조기’ 등 일명 뾰족조기는 조기 대용 생선이다. 앞서 노인이 설명한 침조기(긴가이석태) 역시 기니와 세네갈 근해에서 잡히는데 특히 부산과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제수용 생선으로 인기가 높다. 원양 어선이 드나드는 부산이기에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맛도 호평을 받고 있다.

수많은 생선 중에서 조기와 명태가 중요한 제물이 된 까닭은 뭘까. 조기는 제사상의 중요한 제물이고, 명태는 제수용뿐만 아니라 액막이로 이용된다. 고사나 굿이 끝나고 대문 위 혹은 신장개업한 가게에 액막이 북어를 걸어두거나 어선이나 자동차의 무사고를 기원하며 사용한다. 정연학(국립민속박물관)은 북어가 의례품이 된 이유로 언제나 쉽게 장만할 수 있는 점과 10년이 넘어도 상하지 않고 비린내도 나지 않으므로 제물로 사용하기 적합하다는 점을 든다. 그의 견해에서 ‘언제나 쉽게 장만할 수 있다’에 나는 방점을 둔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여항의 평민은 명태로 포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고, 가난한 가계의 유생 또한 제물로 올릴 수 있으니, 흔한 것이면서 귀하게 쓰인다”라고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의 말에서 화두의 실마리를 찾았다. 조기와 명태는 흔했으므로 두루 귀하게 쓰인 것이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