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대출창구 모습.ⓒ News1
#. 수도권 아파트에 전세 거주 중인 A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억5000만원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전세 기간을 2년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고금리에 따른 부동산 침체 여파로 2년 전 계약 때 6억원이던 전셋값이 4억5000만원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A씨는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전세대출 일부를 상환해 빚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이 올해 들어 3조5000억원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처음 감소세로 돌아선 전세대출 잔액은 이후 감소 폭을 키우면서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금리 인상 여파로 전세대출 금리마저 최고 연 7%를 넘는 등 이자 부담이 커지자, 대출금을 상환하거나 월세로 전환해 주거비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최근 고금리 여파로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A씨와 같이 집주인에게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아 빚을 갚는 사례도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해 꾸준히 증가하다 10월 처음 감소세로 돌아선 뒤 5개월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감소 폭도 10월엔 1351억원 수준이었으나, 올 1월 1조5688억원으로 크게 확대된 뒤 지난달 더 늘었다.
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 잔액이 줄어든 것은 금리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 규모를 줄이거나 월세로 이동하는 세입자가 나타나고, 기존 대출 상환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전날 기준 연 4.50~7.067%(6개월 변동)로 집계됐다. 올 초 최고금리가 연 8%까지 치솟았다가 정부 압박에 따른 은행들의 금리인하 노력으로 7%대로 다시 낮아졌으나, 저금리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불과 1년여 만에 이자 부담이 2배 이상 늘어난 차주가 적지 않다.
전세대출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밀려난 세입자도 늘었다.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지난 1월 전국 전월세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4.6%로, 1년 전에 비해 13.3%p 상승했다.
KB부동산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지난해 6월 6억7792만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줄곧 하락해, 지난달 5억9297만원으로 8개월 만에 8500만원가량 떨어졌다. 2년 전 계약 시점보다 수억원 이상 하락한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세 재계약 시점이 도래한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를 유지하기 위해, 보증금 일부를 되돌려주고 계약을 연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세입자들은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대출금 일부를 상환해 이자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2~3년 전 임대차법 부작용으로 비정상적으로 급등했던 전셋값이 고금리 여파로 안정되면서 전세대출 잔액도 줄어들고 있다”며 “전셋값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상 전세대출 감소세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