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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놈만 팬다…‘무대포’ 박영선의 타깃은 이재명, 다음은 한동훈?[황형준의 법정모독]

입력 | 2023-03-09 14:00:00

[10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022년 11월 17일 서울 서강대에서 ‘디지털 대전환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박 전 장관 제공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정치권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곳이 없다. 고성이 오가며 싸우다가도 ‘하하~호호~’ 웃으며 손잡고 사진을 찍는 게 여의도다. 인간관계보다 어쩌면 이해관계가 더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도 배신자 프레임은 잘 먹힌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독고다이’형이다. (독고다이는 특공대(特攻隊)의 일본어지만 특공대와는 어감이 좀 다르다) 계파에 속해 수장의 리더십을 따르며 수장의 지원사격으로 성장하는 기존 정치의 문법을 벗어나 있다.




● “당내 계파에 얽매이지 않아” vs “기회주의적 행태”



박 전 장관은 MBC 선배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DY)의 삼고초려로 영입된 대표적인 DY계였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이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2009년 3월 탈당하면서 사실상 DY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원내대표이던 시절 2010년 김태호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에서 호흡을 맞추며 박선숙 전 의원과 함께 세 사람은 ‘박남매’로 불렸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내 경선에서 1위를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통합경선에서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뒤처졌다.

손학규 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을 맡으며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선 일찌감치 경희대 선배이자 유력 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을 도왔다. 어느 계파 소속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2015년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전대 출마를 밀었다. 문재인 박지원 등보다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총리는 출마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박지원 전 원장과도 당시 이상 기류가 흘렀다. 2015년 1월 당시 박지원 전 원장의 이야기다.


“지난해 9월 박영선 탈당 기사를 썼던 CBS 김○○ 기자가 ‘형님’ 하며 전화가 왔다. ‘박영선 탈당하면 당내에서 같이 나가려는 움직임이 있을까.’ 그렇게 얘기를 해서 ‘박영선이 탈당하면 129 대 1이 될 것이다. 한 명도 따라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근데 그걸 기사로 썼잖아. 그걸 박영선이 보고 불쾌하게 생각했어.”
                                                                                                                        - 취재 메모 중 -
반면 당시 박지원 전 원장은 박 전 장관이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를 돕기는커녕 ‘김부겸을 적극 돕겠다’고 선언하자 상당히 섭섭해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6년 안철수 의원이 다시 국민의당을 만들면서 박 전 장관은 고심 끝에 민주당에 잔류했다. 탈당한 뒤 국민의당에 합류한 박지원 전 원장과 다른 길을 걸은 것.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경선 과정에선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캠프에 참여했지만 같은 해 4월 문재인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자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2019년 3월 중기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무엇보다 추진력과 성과를 낼 줄 안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2021년 1월까지 중기부 장관 시절은 정책을 추진하며 그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시기였다.

자신을 원내대표에서 몰아냈다고 여겼던 정세균 전 총리와의 악연도 국무총리와 장관으로 다시 만나면서 관계가 다시 개선됐다. 박지원 전 원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에 임명되고 민주당으로 복당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다.

이런 행보에 대해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이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정체성이 불분명한 기회주의자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 시련의 계절 맞았던 2014년 여름… ‘논개 전략’으로 되치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2016년 3월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수정을 요구하는 무제한 토론에서 눈물을 흘리며 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박 전 장관이 계파정치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파 청산”을 외쳤던 것은 2014년 원내대표 당시 경험과 무관치 않다. 그는 2014년 5월 투표함을 까보기 전까지는 예상하기 어렵다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첫 원내대표로 당선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패배하면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는 다음 날 바로 사퇴했다. 원내대표였던 박 전 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을 잠시 겸임하게 되면서 내분이 시작됐다.

발로는 박 전 장관이 당내 의견수렴 없이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과 세월호 참사 특별법에 합의하면서다. 당시는 여야가 특별법 처리를 두고 기싸움을 이어가 장기간 식물국회라는 비판을 받던 시기다. 야당으로선 특조위와 특검 구성 방식 등에 있어서 유가족 등에 보다 유리한 법안을 밀어붙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내 주류였던 친노(친노무현) 강경파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박 전 장관의 특별법 합의안을 거부하며 혼란이 벌어졌다. 당시 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유족이 반대하는 특별법은 반대한다”는 취지로 합의안 반대 목소리를 냈고 급기야 세월호 참사 유족인 김영오 씨의 단식에 동참했다.

박 전 장관은 의원들 설득에 나섰지만 여야 재합의안도 야당 내부에서 반대하면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급기야 비대위원장을 내려놓았지만 친노 강경파들은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그때 박 전 장관은 참 많이 울었다. 당시 박 전 장관의 옆에 있던 한 당직자의 말이다.


“회의를 하는 동안 바로 옆에서 의원들이 번갈아 면전에서 박 전 장관을 조졌어. 얼마나 굴욕적이었겠어. 그런데도 박 전 장관은 그 의원들 앞에서 20~30분 꿋꿋하게 버티더라. 그러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내실로 들어가 결국 소리 내서 울더라고. 분에 못 이겨서….”
비대위원장을 놓고도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교수 등이 거론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불발되면서 ‘문희상 비대위’ 체제로 넘어갔다. 당권을 노렸던 문재인 정세균 박지원 의원도 모두 비대위원으로 합류했다.

거듭된 원내대표직 사퇴 요구에 탈당까지 시사했던 그는 선출 5개월 만에 10월 초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이 마련되자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사퇴의 변’을 의원들과 언론에 보냈다.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범친노계의 수장이자 ‘직업적 당 대표’로 지목된 정세균 전 총리는 당시 “‘박영선’ 스러운 사퇴문”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미 당 대표를 3번 했는데도 또 욕심을 내냐는 뉘앙스가 담긴 표현이었다. 직격탄을 맞은 정 전 총리는 결국 이듬해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았다. 죽어도 혼자 죽지 않겠다는 일종의 ‘논개 전략’이었던 셈이다.


박영선 전 장관이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2014년 10월 2일 오전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동아일보DB





● ‘무대포’처럼 센 놈만 골라 패… ‘안티’ 많은 외골수
1999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등장인물 ‘무대포’(배우 유오성)는 “난 한 놈만 패!”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전쟁터에서든 학교에서든 장수의 목을 가져오거나 ‘짱’의 코피를 터뜨리면 싸움이 승리로 끝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박 전 장관은 때론 ‘무대포’와 닮았다. 박 전 장관은 싸울 때 가장 센 놈만 골라 팬다. 박 전 장관은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릴 때 1등 기업인 삼성을 겨냥했고 2007년 대선 당시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의혹을 집중 공략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 전 총리에겐 ‘직업적 당 대표’라는 오명을 붙였다. 중기부 장관 때는 부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대전 지역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청사 이전을 밀어붙였다.

화법도 직설적이고 단호하다. 한 우물만 파는 외골수여서 때론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싸우는 일도 많았다. 전투력이 센 만큼 당 안팎에서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꼽혔다. 대화가 안 통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를 피하거나 ‘안티’가 됐다. 감정이 ‘언스테이블(unstable)’ 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에 이 같은 점은 지도자로서의 단점으로 꼽히곤 했다. 2014년 8월 한 당직자의 이야기다.


“지도자는 조지는 것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박영선이 아직 적응 중인 거 같다. 아랫사람은 싸워도 본인은 싸우지 말아야 한다.”
                                                                                                                      - 취재 메모 중 -



●  이재명 사법 리스크·디지털 정당에 꽂힌 박영선

2021년 3월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출근 인사를 위해 남편 이원조 씨(오른쪽 끝)와 이동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박 전 장관은 요즘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그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의 분당 가능성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현재 미국에 체류하면서도 라디오 등을 통해 “이 대표가 공천권을 내려놓는다면 사법 리스크에서 탈출할 수 있고,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천 혁신 없이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로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 이른바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를 정당에 접목시킨 ‘DAO 정당’, ‘디지털 정당’ 도입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와 당원들, 기존 안티 세력들은 “누릴 건 다 누려왔으면서 합심해야 할 때 이재명 지도부를 흔든다”, “총구를 내부로 돌리며 분탕질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다. 반면 박 전 장관을 옹호하는 측에선 그가 18대 의원 시절부터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법안을 제출하는 등 일관된 목소리를 내온 만큼 소신 행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연말까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공부할 예정이지만 국내 정치 상황과 당내 리더십의 변화에 따라 중도 귀국할 가능성도 있다.

그가 계파 청산과 ‘새 물결’을 외쳤던 2015년처럼 당내 갈등도 다시 데자뷔처럼 재연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계기로 친명계와 비명계가 대립하는 가운데 그가 과연 혁신의 아이콘이 될지, 분탕질의 낙인이 찍힐지 관전 포인트다. 내년 총선에서 박 전 장관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래픽=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박영선 전 장관을 다룬 <9화>에서 많은 독자들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당시 논란이 됐던 도쿄 아파트에 대해 비난 댓글을 달았습니다. 당시 박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BBK 주가조작 의혹을 적극 제기했던 본인 때문에) 2008년 회사에서 쫓겨난 남편이 일본에서 직장을 구해 거주한 것”이라는 취지로 투기용이 아닌 실거주용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즉각 해당 아파트를 처분했습니다만 여전히 그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산업계에선 피터팬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는 네버랜드 속 피터팬처럼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으로 남고 싶어 하는 회사를 뜻하지요. 박 전 장관은 어찌 보면 2014년 원내대표에서 중도 낙마한 뒤 그 세계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장통을 겪고 있던 것일까요? 다른 이들이 체급을 올릴 동안 ‘정치 인생이 역전당한 것’이지요. (박 전 장관이 2007년 정동영 대선 후보의 총괄지원실장이었던 자신 밑에 이재명 대표가 부실장으로 있었다는 것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한 표현입니다.)

중기부 장관을 지내며 그 트라우마는 상당히 극복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어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선주자급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대란에 이어 민주당이 보궐선거 사유 제공 시 무공천하겠다고 한 약속을 뒤집으면서 이미 민심은 기운 상태였습니다.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박 전 장관이 자주 인용하는 말입니다. 이 말처럼 지금은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박 전 장관은 국회 법사위원장 출신으로 한 때 ‘검찰 저격수’로 불렸습니다. 그만큼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검사(檢事) 출신 여권 인사들에게 맞서 민주당이 박 전 장관을 ‘자객 공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전력이었지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맞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했듯 총선에서 빅 매치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법정모독 1~10화에선 한동훈 윤석열 이낙연 안철수 박영선 등 법조인과 여야 정치인을 번갈아 다뤘습니다. <11화>에선 법조계 인사로 넘어갑니다. 가끔 조선시대 대사헌(大司憲)을 AI(인공지능)로 구현해 놓으면 이분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11화는 2주 뒤인 23일 공개됩니다.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