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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겪은 이들을 향한 위로…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입력 | 2023-03-09 13:40:00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스즈메가 폐허가 된 마을에서 재난을 일으키는 문을 열고 있다. 미디어캐슬 제공



이토록 아름다운 위로와 격려가 있을까. 차세대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8일 개봉했다. ‘너의 이름은’(2016년) ‘날씨의 아이’(2019년)에 이어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3부작 마지막 시리즈다.

영화는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여고생 스즈메가 대학생 소타와 함께 일본 전역에서 마구잡이로 열리는 문들을 닫아 나가는 이야기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빛과 색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는 감독 특유의 연출기법이 돋보인다.

8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카이 감독은 또 재해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너의 이름은’이 크게 흥행했고 그러고 나면 다음 작품을 봐주는 관객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다. 그건 힘인 동시에 책임”이라면서 “젊은 세대에게 그 기억(재해)을 남겨줄 수 있는 건 엔터테인먼트 뿐”이라고 했다. 그의 재난 3부작은 모두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넘겨 ‘트리플 1000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8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개봉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곳곳에 쓰인 소재는 동일본 대지진을 함축한 것들이다. ‘문’을 주요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해 신카이 감독은 “문을 열면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문을 닫으면서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일상”이라며 “재해는 그러한 일상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문을 모티브로 했다”고 설명했다. “(문을 공간 이동 매개로 쓴)한국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도 했다.

또 하나는 다리 하나가 빠진 어린이용 의자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인 소타는 의자로 모습이 변해버린다. 그는 기우뚱거리면서도 재해를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내일을 살고 싶어 한다. 신카이 감독은 “재해로 마음속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이라도 의자처럼 잘 달리고 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의자를 택한 것에 대해서는 “영화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비극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만 하면 관객의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 장소에 있기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귀여운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의자라는 소재를 골랐다”고 했다.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스즈메가 자신의 실수로 재난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막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는 불가항력으로 소중한 것을 잃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손 내미는 격려다. 스즈메는 쓰나미로 4살에 엄마를 잃고 난 뒤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소타를 만나면서 살고 싶어진다.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삶이라는 걸 깨닫는다.

영화는 개봉 첫날 관객 14만3000여 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신카이 감독은 “일상이 단절됐을 때 사람이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 꿋꿋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며 “한국 관객들도 즐겁게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