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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증거인멸 교사’ 또 유죄…2심서도 못 떨쳐낸 흑역사

입력 | 2023-03-09 16:17:00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59·사법연수원 23기)에게 항소심 재판부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전 차관은 사실상 택시기사 폭행보다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적극적으로 다퉜지만 이를 유죄로 본 1심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9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원범)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폭행 등)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차관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함께 기소된 경찰관 A씨에게도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차관은 변호사 신분이던 2020년 11월6일 자택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자신을 태우고 온 택시기사 B씨를 술에 취해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함께 B씨에게 블랙박스 영상 삭제를 교사한 혐의도 받는다.

이 전 차관은 B씨와 합의했고, 경찰은 B씨 의사와 무관하게 기소할 수 있는 특가법이 아닌 일반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 종결했다. 당시 이 전 차관은 초대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 차관이 같은 해 12월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된 후 언론을 통해 해당 사건이 보도됐고, 이후 경찰이 이 전 차관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거나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기소할 수 있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아 논란이 된 것이다.

논란이 이어지자 경찰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돌입했다. 조사 결과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인 것을 경찰관들이 인식했고, 이 전 차관이 1000만원을 합의금 명목으로 B씨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수사를 맡은 서울 서초경찰서가 서울경찰청에 해당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검찰은 재수사 끝에 이 전 차관과 A씨를 각각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과 특수직무유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전 차관은 재판 과정에서 운전자 폭행 혐의는 인정했지만 증거인멸교사 혐의는 부인해 왔다. 동영상을 삭제해달라는 교사가 성사되지 않았고, 당시 B씨가 자신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영상을 삭제했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B씨가 이 전 차관과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있던 블랙박스 영상을 ‘나에게서 삭제’ 방식으로 지워 원본이 남아있었던 점 ▲이 전 차관의 부탁을 받고 경찰에 허위진술을 했던 B씨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삭제했을 수 있는 점 ▲B씨가 영상을 언론 등에 유포할 것을 우려해 삭제를 부탁한 것인 점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이 전 차관의 이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1심은 원본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증거가 삭제됐으므로 증거인멸교사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B씨가 “영상을 지우는 취지로 합의를 봤다”, “이 전 차관의 부탁이 있어 영상을 지우게 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점 역시 혐의 인정에 중요하게 고려됐다.

그러면서 이 전 차관이 영상 삭제를 교사한 이유에 대해 “이 전 차관이 당시 초대 공수처장 후보였다는 우려가 이 전 차관의 범행동기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단순히 언론 배포를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법률가였던 이 전 차관으로서는 증거인멸교사가 아닌 다른 방법을 충분히 택할 수 있었다고도 봤다. 영상 삭제가 ‘방어권 행사’에 해당한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이 전 차관이 A씨에게 ‘폭행이 자동차에서 내린 뒤 벌어진 것으로 허위 진술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한 것은 특가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이 전 차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원본 영상이 남아있었던 점, B씨와 합의한 점, B씨가 입은 상해가 크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이 전 차관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전 차관은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도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을 모두 유지했다.

재판부는 B씨가 이 전 차관의 증거 영상 삭제 제안을 ‘확정적으로’ 거절했던 점, 이 전 차관이 B씨에게 폭행 경위에 대한 허위진술을 요구한 사실을 인정한 점 등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또 실제 B씨가 허위진술로 인한 자신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우려했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이 전 차관의 부탁과 영상 삭제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 때부터 펼쳤던 주장들이 항소심에서도 모두 배척된 것이다. 부장판사·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내고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인물이 ‘자신의 형사사건에서 증거인멸을 교사했다’는 ‘흑역사’를 2심에서도 떨쳐내지 못한 셈이 됐다.

이날 이 전 차관은 선고 직후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함께 기소된 경찰관 A씨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A씨가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의 법리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점, 상관으로부터 공수처장 후보이니 혐의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증거도 없는 점 등을 무죄의 주요 근거로 판시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