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횡단보도에 ‘이완용의 부활인가!’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2023.03.09. 뉴시스
“당에서 현수막을 걸고 사진을 찍어 보고하라는데, 무슨 ‘동네 깡패’도 아니고….”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당에서 내려온 현수막 시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야가 극단으로 대립하다 보니 당에서 붙이라고 요구하는 현수막의 문구도 너무 자극적”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구에선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이 최근 정부여당을 직격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곳곳에 내건 가운데 일부 의원들이 “부적절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현수막 게시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 ‘이완용 부활’ 현수막에 펄쩍
민주당은 이번주 초 각 지역위원회에 ‘이완용의 부활인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시안을 전달했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 방안이 친일 행태라는 취지로 ‘을사오적’ 이완용에 빗대어 비판한 것. 민주당은 ‘국민능멸 굴욕외교’ ‘친일본색 매국정권’ 등의 시안 2종도 함께 내리며 “현장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게시하라”는 지침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수도권 등 일부 지역 의원들은 “지도부의 반일 프레임이 과하다”며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 소속인 한 수도권 의원은 “나도 지역구에 ‘이완용’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현수막은 달지 않았다”며 “문구를 좀 바꿔서 현수막을 게시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실 관계자도 “당에서도 문구가 자극적이라는 우려가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고, 현수막을 붙이지 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걸지 않았다”며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총선 앞두고 중도층 민심과 괴리”
이처럼 현수막 게시를 거부하는 의원들이 늘면서 강성 지지층과 비명계 의원들 간 ‘현수막 전쟁’도 벌어지고 있다. 개딸(개혁의딸) 등 강성 지지층이 비명계 의원들 지역구를 다니며 현수막 개수를 체크하고 있는 것. 이들은 특히 이 대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 및 50억 클럽 특검을 수용하라는 내용 등의 현수막이 실제 내걸렸는지를 일일이 확인하며 이를 토대로 ‘수박(겉으론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의미의 은어) 색출’에 나섰다.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마을’ 에는 각 지역구에 붙은 당 현수막 개수를 공유하는 글도 잇따르고 있다.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현수막을 붙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딸들의 민원이 쏟아지는 등 압박이 심하다”며 “중도층 민심과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생이 아닌 정파성을 강조하는 현수막을 붙이기는 부담스럽다. 이대로 어떻게 총선을 치르겠단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