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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가치 높여라” 소액주주들 주총 연대 바람

입력 | 2023-03-10 03:00:00

단체카톡방 등서 의결권 모아 배당 확대-이사 선임 등 요구
주주제안 상정 기업 2.5배로… 행동주의펀드 공세도 거세져




“‘개인 투자자는 원래 뭉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구심점’만 있다면 충분히 함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 장기윤 씨가 또 다른 경제학도 김건수 씨와 의기투합해 만든 일명 주주 행동주의 플랫폼 ‘한톨’. 한톨은 지난해 말부터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더니, 2월 코스닥 상장사인 한국알콜에 정관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주주제안을 제출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이한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주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액주주들 간의 연대가 활발해지는 한편 행동주의 펀드의 진격도 이어지고 있다.


● 주주제안 안건 상정 기업, 1년 사이 2.5배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6일 기준 3월 정기 주총을 여는 12월 결산법인 중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채택한 상장사는 25곳에 이른다. 10개사에 그쳤던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안건별로는 현금·주식 배당과 이사 및 감사, 감사위원 선임이 각각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관 변경(11건)과 주식 취득·소각·처분 등(4건)이 그 뒤를 이었다.

현행 상법상 의결권이 있는 지분 3% 이상을 확보하거나 6개월 전부터 1% 이상을 보유하면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의결권을 직접 위임받아야 했지만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개인 투자자들의 결집이 용이해지면서 소액주주의 주주제안권 행사 사례는 급격히 늘고 있다.

누구나 검색해 참여할 수 있는 주주제안 단체 카톡방이 넘쳐나고, 증권사 계좌와 연동해 의결권을 모으는 ‘헤이홀더’ 애플리케이션(앱)까지 등장한 덕분이다. 최근 네이버에도 차기 대표이사 선임 안건이 상정될 정기 주총을 앞두고 KT 소액주주 ‘카페’가 개설됐다. 주주제안 단체 카톡방에 참여 중인 한 개인 투자자는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에서 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사측의 태도에 불만을 가졌다”며 “회사가 조금이라도 소액주주를 위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연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 주총장에서 ‘표 대결’도 이어질 전망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경영권 분쟁에 불씨를 댕긴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은 최근 JB금융지주와 맞붙었다. 얼라인이 JB금융에 배당 확대와 사외이사 추천 등을 주주제안으로 제시하자, JB금융은 9일 “과도한 배당 확대는 주주 이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얼라인의 제안에 반기를 들었다. 30일 주총장에서 표 대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안다자산운용은 이달 말 예정된 KT&G 주총 때 한국인삼공사 인적분할 안건을 상정해 달라는 가처분을 3일 대전지방법원에 신청했다.

주주들의 활발한 실력행사를 두고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7일(현지 시간) “최근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책과 주주제안들은 낮은 배당률과 빈약한 주주 환원으로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보여 온 한국 시장에 대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암시한다”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반면 일각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소수 지분으로 지나치게 경영권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주주제안이 단기 투자 수익 극대화에 매몰되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 수익률 달성이라는 목표가 짙어지게 되면 주주 행동주의 본래의 긍정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