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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 4명중 1명, 고령 운전 사고

입력 | 2023-03-10 03:00:00

[고령운전 ‘비상등’]
고령 면허 반납률은 年 2% 그쳐




전북 순창군에서 8일 70대 운전자가 몰던 1t 화물트럭이 인파를 덮쳐 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친 사고 이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기준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4명 중 1명이 고령 운전자 사고인데, 이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의 3배 이상이다. 9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순창군 사고가 고령 운전자의 조작 미숙에서 비롯됐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막을 추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1년 교통사고로 인한 전체 사망자 2916명 중 709명(24.3%)이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에서 발생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 206명(7.1%)의 3배를 넘는다. 2017년의 경우 고령 운전자 사고 사망자가 20.3%,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가 10.5%였다.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 운전자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매년 늘고 있다. 2017년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 운전자 사고는 12.4%를 차지했는데 2021년에는 15.7%였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2018년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를 도입했지만 면허 반납자 수는 매년 2%가량에 불과하다.





“고령운전자, 인지능력 떨어져 사고위험” vs “시골선 車없인 못살아”



고령운전 사고 매년 증가

정부-지자체 ‘면허 반납’ 유도에도
대중교통 열악한 지방선 참여 저조
전문가 “100원택시-행복버스 늘리고
면허요건 강화 등 합리적 규제 필요”

지난 8일 순창서 사고를 일으킨 1t 트럭과 사고 직후 혼란스러운 현장 모습. 순창=뉴스1

고령 운전자로 인한 사망 사고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3월 부산에선 80대 남성이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주택가 버스정류장을 덮쳐 60대 남성이 사망하고 60대 여성이 부상을 당했다. 순창 참사에서처럼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1년 12월 부산 재래시장에선 8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급가속하면서 60대 여성과 18개월 손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때마다 고령자 면허 반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최근 3년간 고령 운전자가 100만 명 넘게 늘어난 데 비해 면허를 자진 반납한 이는 연간 10만 명 안팎에 그치는 형편이다. 경찰 관계자는 “순창 사고는 최근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 중 최악의 참사”라며 “고령 운전자가 앞으로도 매년 30만 명 이상씩 늘 것으로 보이는 만큼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 “운전 못 하면 생활 불가능” 지방 반납률 낮아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438만7358명 중 면허를 반납한 사람은 11만2942명(2.6%)에 불과했다. 대도시보다 농어촌 지역의 경우 면허 반납률이 더 저조하다. 경북의 반납률은 1.7%, 충북은 1.9%, 전남은 2.0%에 그친다.

이는 대중교통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면허를 반납하면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고가 발생한 순창군 구림면 단풍마을에 사는 주민 김길선 씨(80)는 “읍내를 오가는 버스가 하루 세 번밖에 없다”며 “면허 반납을 고민하다가도 당장 농사에 쓸 비료를 사서 날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다시 운전대를 잡게 된다”고 했다. 이 마을 주민 평균 연령은 70세가 넘지만 주민 20명 중 7명이 여전히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

주민 서대순 씨(74)는 “택시를 타면 순창 읍내까지 2만2000원이 나온다”며 “버스가 너무 안 와서 119구급차를 부른 적도 있다”고 했다. 단풍마을 옆 대산마을 주민 강성희 씨(67)도 “여기선 차가 없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면허 반납 인센티브 늘리고 이동권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막기 위해선 면허증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면허 반납 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동시에 고령자 이동권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선 현재 7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3년마다 적성검사를 실시한 후 면허를 갱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주행 테스트 없이 기본 적성검사만 하다 보니 형식적이란 지적을 받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령화가 되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혼동하는 등 기기 조작, 인지 판단 능력이 떨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운전자가 치매 등 특정 질병을 진료받은 이력이 있는지 전문의가 자료를 검토해 인지 능력을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화물차 택시 등 사업용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 만 65∼69세는 3년마다, 만 70세 이상은 매년 자격유지검사를 받게 했다. 다만 여기에 학원 통학 차량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2019년 학원 통학차를 몰던 81세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5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도 발생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다수의 학생이 탄 학원 통학 차량이나 스쿨버스의 경우 사업용 운전자와 같이 정밀검사를 받게 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면허 반납 시 주어지는 인센티브도 턱없이 부족하단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한 차례 10만∼50만 원의 교통비를 지원하는 수준인데 이보다 대체 교통수단 등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혜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조준한 박사는 “일회성 혜택보다 실제 이동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이용할 수 있는 수요응답형 대중교통 수단을 늘려야 한다”며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100원 택시’나 행복버스 같은 제도를 늘려야 반납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서천군의 경우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지역 주민에게 읍 소재지까지 1500원, 면 소재지까지 100원에 택시를 운행해 미국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순창=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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