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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묻은 흰 바지 입고 출근한 女의원 “나도 알아, 뭐 어때”

입력 | 2023-03-10 12:09:00

케냐의 글로리아 오워바 상원의원이 지난달 14일 붉은 자국이 묻은 하얀색 정장바지를 입고 의회에 출근하고 있다. 오워바 트위터 갈무리


케냐의 한 여성 의원이 흰색 정장 바지에 피처럼 붉은 자국을 묻힌 채 의회에 출근했다. 이 의원은 월경혈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죄악시하는 아프리카의 고정관념 타파하기 위해 이 같은 퍼포먼스를 펼친 것으로 추정된다.

AP 통신은 지난 8일(현지시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케냐의 오워바 의원(37)을 소개했다.

오워바 의원은 지난달 14일 월경혈이 묻은 바지를 입고 당당히 의회로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펄쳤다. 그는 “나도 바지에 묻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니 (갈아입지 않고) 그냥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회 측은 그의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의회 측이 밝힌 출입 거부 사유는 ‘복장 규정 위반’이었다. 매체는 월경혈에 대한 아프리카 특유의 거부감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했다.

한 남성의원은 “아내와 딸도 월경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주장했다. 다른 여성의원도 “바지에 실수로 묻은 건지, (다른 염료로) 일부러 속인 건지는 모르겠다”면서 “너무 외설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오워바 의원은 출석을 거부당한 뒤 옷을 갈아입지 않고 한 학교를 방문해 생리대 무료 배포 행사에도 참석했다.

그는 “여성들은 내 바지를 가려주는 등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런 선의의 행동조차 반갑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월경혈은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배웠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워바 의원의 파격 행보는 지난 2019년 케냐의 14세 소녀 극단적 선택 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소녀는 학교에서 첫 월경을 경험했는데, 그의 교복에 묻은 피를 본 교사가 “더럽다”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이에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 소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워바 의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월경혈을 흘리고, 남에게 보이는 것은 결코 범죄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아프리카의 고정관념 타파를 위해 뛰고 있다.

그는 케냐 전역의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늘리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 케냐 보건부 통계에 따르면 도시 지역 여성의 65%, 농촌 지역 여성의 46%만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워바 의원은 “월경권을 위한 최전선에 선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면서 “10대 아들에게도 월경하는 여학생에게 수치심을 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여성들은 뻔뻔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