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거짓에 속는 마음의 작동 원리(1)
똑똑하다고 한 번도 안 속는 게 아닌 것처럼 멍청하다고 잘 속아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지능과는 큰 관계없이 우리 마음에서 뭔가 복잡한 작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DB
‘멍청해서 속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짜에 속는 건 지능과는 큰 관계가 없다. 최근 또 다시 주목받는 사이비 교주에 속은 전문직 종사자도 많지 않은가. 그만큼 거짓에 현혹되는 것은 단순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왜 우리가 거짓 정보에 속게 되는가에 대한 원리를 밝힌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연구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사람은 진실할 것”이라는 믿음
우리에게는 상대방이 말하는 정보를 일단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듣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착해서가 아니라 의사소통의 효율성 때문에 그렇다. 누군가로부터 처음 듣게 된 생각이나 정보를 일단 사실로 인정해야 대상의 실체를 이해하는 게 쉽다. 처음 접하는 정보 하나하나를 의심하며 검증하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피곤한 일이다.이를 진실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30년 이상 대인 관계 속임수에 관해 연구한 티모시 르바인 미국 앨라배마대 버밍엄캠퍼스 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이 이론을 처음 학계에 내놨다. 그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14년 한국에서 해당 논문을 발표했다. 르바인 교수는 “이 이론이 작동하는 것은 매사에 의심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대부분의 순간에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동시에 이런 성향은 속임수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거짓이란 걸 이미 알고 있어도 속는다
한 번에 여러 정보가 쏟아지면 더 쉽게 속는다. 주의가 산만해지면서 진실과 거짓을 가릴 여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짓말인 것을 미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의사결정을 하는데 인지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시간 제한 등 외부 압박이 주어지면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거짓말을 판별해 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경우라도 한 번에 여러 정보가 쏟아져 인지 처리에 과부하가 생기거나 시간 제한 등 환경적 압박이 가해지면 판단을 내릴 때 실수를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결과 집중해서 보고서를 읽은 실험 참가자들은 두 사건 강도에게 각각 6년 정도의 징역형을 비슷하게 선고했다. 하지만 집중에 방해받은 실험 참가자들은 악의적인 허위 내용이 기재된 보고서의 강도에게는 평균 11년 형을,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허위 내용이 담긴 보고서의 강도에게는 평균 6년 형을 선고했다. 연구팀은 “인지에 과부하가 걸리고 보고서를 읽는데 시간적 압박을 느끼면서 잘못된 정보를 믿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지보다 무서운 정보 편식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면서 계속 믿음을 강화해 나가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이 음모론과 관련된 콘텐츠만 찾아보며 더욱 굳건하게 진실로 믿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대부분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고 고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또 정보 편식은 반대 입장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보 편식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실비아 웨스터윅 교수 연구팀이 실제로 실험에서 사용했던 가상의 뉴스 웹사이트.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같은 것을 본 게 맞나? 해석은 각자 ‘알아서’
객관적인 사실을 해석할 때도 편향성이 드러난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동기화된 추론(논증)’이라고 한다. 지바 쿤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는 1990년 발표한 ‘동기화된 추론의 사례’ 논문에서 “동기화된 추론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사고 전략을 취한다”고 설명했다.즉 믿고 싶지 않은 근거는 무시하고, 믿고 싶은 근거만 채택해 결론에 유리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자료를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작 자신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고의로 남을 속이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일어난다.
빌 게이츠는 2015년 3월 TED 강연에서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에 이어 앞으로 발병할 수 있는 전염병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TED 공식 영상 캡처
여기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은 그가 강연에서 했던 발언과 출판된 저서뿐이다. 하지만 음모론을 믿는 이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해석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10명 중 9명 수준인 국내 백신 접종 인구가 MS 칩에 조종 당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거짓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멋쩍은 우리의 마음은 또 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낸다. 이를 설명하는 인지부조화의 개념은 다음 기사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다음 주에 가짜뉴스에 속는 이유 2편이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사이비 종교를 통해 본 자기 합리화의 원리인 인지부조화 △모두가 ‘예스’할 때 ‘노’할 수 없는 사회적 동조의 욕구 △반복 노출의 폐해 등에 대해 다룹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