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 상가 앞은 일요일을 빼고 매일같이 수십, 수백 명이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대기 줄이 길 땐 아파트 단지를 에워쌀 정도라 한다. 상가 1층의 편의점이 로또 1등 당첨자를 49명이나 배출한 국내 1위 ‘로또 명당’이기 때문이다. 2002년 첫선을 보인 로또는 작년에만 5조4000억 원가량 팔렸다. 숫자 1부터 45 중 6개를 맞히는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 1.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지만, 전국의 로또 명당들은 대박의 기운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로또를 포함해 전체 복권 판매액은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처음 5조 원을 돌파했다. 주식·코인 투자 열기만큼이나 인생 한 방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이어 작년에는 6조 원도 가뿐히 넘었다.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성인 절반 정도가 복권을 산 적 있고, 4명 중 1명은 매주 복권을 산다고 했다. 전체 성인 인구를 대입하면 600만 명 가까이가 인생 역전을 꿈꾸며 한 주도 빠짐없이 ‘행복 티켓’을 사는 데 지갑을 연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소득 하위 20%에 속한 저소득층의 월평균 복권 구매 비용이 30% 가까이 급증했다. 상위 20% 고소득층의 복권 구매가 7% 늘어나는 데 그친 것과 비교된다. 치솟는 물가와 금리로 허리가 휘는 와중에도 저소득층이 복권을 사는 데 기꺼이 돈을 썼다는 얘기다. 그만큼 서민들이 기댈 데라곤 복권의 요행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권은 술·담배처럼 경제가 어려울수록 잘 팔리는 불황형 상품으로 꼽히는데, 금융위기 직후에 그랬고 이번에도 속설이 입증됐다.
▷복권 판매액의 절반은 당첨금으로 나가고, 40% 정도는 복권기금으로 적립돼 취약계층 복지 사업 등에 쓰인다. 그래서 혹자는 당첨되면 큰돈이 생겨서 좋지만 당첨이 안 되더라도 생활 속 작은 기부를 실천한 셈 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팍팍해지고 일자리는 위태로워진 서민들이 지갑 속 로또 한 장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현실은 위태롭다. 복권이 희망인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