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노조 회계 공시’ 충돌… 勞“조합원에만 공개” 政“국민도 알권리”

입력 | 2023-03-13 03:00:00

勞 “자율성 침해… 정부의 월권” 주장
政 “최소한의 자료 확인 취지” 반박
전문가 “노동계 협조 끌어내야 성과”
오늘 당정협의 거쳐 개정안 마련




정부·여당은 13일 당정 협의를 거쳐 이달 초 발표한 노동조합 회계 관리 강화 대책을 토대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 같은 노조 회계 관리 강화 방안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몰아간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와 정부가 대립하는 쟁점과 대안을 전문가들과 함께 12일 분석했다.


● 쟁점1. 노조 회계 장부 통째로 내라?

노동계가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자치 영역인 노조의 재정 문제에 간섭해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국고보조금에 대해서는 이미 관련 절차에 따라 필요한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고 있는데 조합원들에게 받은 조합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간섭하는 건 ‘월권’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재정 운영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재무제표 등 최소한의 자료를 확인하는 취지라고 반박한다. 1월 실시한 자율 점검 때도 노조 재정 장부의 표지와 속지 1장만 제출하라고 했고, 속지의 경우 민감한 내용을 가려도 된다고 했는데 노조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회계 공시 역시 모든 재정 장부를 공개하는 게 아니라 노조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갈등을 줄이려면 정부가 최대한 빨리 구체적인 공시 범위를 정하고 왜 자료를 공개해야 하는지 노동계를 설득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봤다.


● 쟁점2. 대국민 공시냐, 조합원 공개냐

노동계는 노조 회계 공시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9월까지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조금 우선 지원, 세액공제 등 각종 인센티브를 줘 자율 공시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정 비율 이상의 조합원이 요구하거나 횡령·배임 등이 발생한 노조의 경우 반드시 공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에 노동계는 “조합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면 되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반면 정부는 “노조는 국고보조금, 조합비 세액공제 등 각종 혜택을 받고 4대 보험 운영 같은 공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집단”이라며 “국민들도 노조 회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엇갈린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조의 사회적 역할이 커진 만큼 외부에도 회계 운영 실태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노조 회계에 문제가 있다면 조합원들이 회계 감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해야지 정부나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건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봤다.


● 쟁점3. 국내 노조 회계 관리, 해외보다 부실?
현재 한국의 노조 회계 관리 규정이 주요 선진국보다 느슨한 것은 사실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에서는 노조가 재무 현황, 임원 보수 등이 담긴 보고서를 매년 행정 관청에 제출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공인회계사 등 자격이 있는 독립된 회계감사원에 회계 감사를 매년 받아야 한다.

이를 근거로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조합원의 회계 열람권을 강화한 정부 대책의 방향성에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한다. 다만 제도를 도입한 역사적 배경이 나라마다 달라 일괄적으로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가 주요 회계자료를 정부에 내는 미국의 경우 1950년대 조폭과 결탁한 거대 노조 부패 사건을 계기로 노조도 스스로 자정 필요성을 공감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노동계의 자발적 협조 없이는 노조 회계 관리 강화 방안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노조 관련 횡령·배임 등의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여론이 악화돼 노조 스스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만큼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라는 단체의 특수성을 고려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