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우디와 관계 회복 이어 美 고립전략 뚫기 승부수 띄운듯 “시위-경제난에 국내용 발표” 분석도 中, 중동서 보폭 늘리며 美 허 찔러
10일 중국의 중재로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전격 관계 회복에 나선 이란이 억류 중인 3명의 미국인 수감자를 두고 “미국과 교환 합의를 했다”고 12일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즉각 “잔인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는 등 양측의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재선 도전 준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우크라이나 전쟁 대처 등으로 바쁜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에 예전만큼 집중하지 못하는 사이 중국을 등에 업은 이란이 미국의 경제 제재 및 고립 전략을 뚫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사안은 한국 내 이란 동결 자금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란과 서방의 핵합의를 전격 탈퇴하고 경제 제재를 강화하면서 한국에는 약 70억 달러(약 9조2600억 원)의 이란산 원유 대금이 묶여 있다. 이란은 줄곧 한국에 이 돈을 달라고 했고 미국에도 “수감자를 풀어주는 대가로 한국에 동결된 자금을 달라”고 촉구했다. 이란이 과거에도 죄수 교환과 동결 자금 해제가 임박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터라 이번 공방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 주목된다.
● 이란 “美와 합의” vs 美 “거짓”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은 12일 국영방송에서 “최근 며칠간 미국과 수감자 교환에 관한 초기 합의에 도달했다”며 “미국 측의 최종 조정이 이뤄지면 단기간 내 포로 교환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란의 주장과 관련해 AP통신에 “수감자 교환 협상이 타결됐다는 주장은 가족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잔인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에이드리엔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또한 “현재로선 발표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란은 지난해 초부터 미국에 수감자 3명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미국에 수감된 10여 명의 이란 국적자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유엔, 카타르, 스위스 등도 중재에 나섰지만 한국 내 동결자금 해제, 핵합의 복원 등 얽힌 사안이 많아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 이란에서 ‘히잡 의문사’를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발하면서 이란 당국의 시위대 탄압을 놓고 양측의 대립은 더 격화됐다. 미국은 이란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무인기, 탄환 등 각종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것도 비판하고 있다.
● 中에 허 찔린 美
이란의 이번 주장이 사우디와의 관계 복원 이틀 만에 나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은 핵개발에 나선 이란을 중동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맹방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복원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각종 인권 탄압을 비판하면서 사우디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이 상황에서 이란이 발 빠르게 사우디와 손을 잡은 데다 그 배후에 미국과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는 중국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동에서 완전히 허를 찔린 모양새다.
현재 사우디는 미국에 민간 핵개발 지원과 각종 안전 보장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역시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 사안이어서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도 국교 정상화 협상에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미중 사이에서 노골적인 줄타기를 하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