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찾아 원정출산] 전국 분만실 8년새 20% 급감… 지자체 지원에도 원정출산 ‘고행’ “둘째 낳는 건 상상도 못 할 일”… 취약지 산부인과 접근성 높여야
# 충북에는 올해 1월부터 ‘임신부 전용 구급차’가 6대 생겼다. 충북소방본부가 보은 옥천 괴산 증평 음성 단양 소방서에 있는 예비 구급차를 임신부 전용으로 바꿔 운영하는 것이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이 구급차를 타고 검진이나 진찰을 받으러 병원에 다닐 수 있다. 구급차에는 이동 중에 아이를 낳게 될 상황에 대비한 탯줄가위와 시트 등이 담긴 분만키트도 있다. 임신부 전용 구급차가 등장한 건 이 6개 지역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1시간 넘게 걸리는 지역에 있는 산부인과까지 힘겹게 오고 가는 임신부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 강원도에는 화천 인제 양구 등 5개 지역의 임신부들이 출산 3주 전부터 잠시 머물 수 있는 아파트가 1채 있다. 이들 지역 역시 차로 1시간 이내에 분만 산부인과로 접근하기 어려워 정부가 ‘분만 취약지’로 지정한 곳들이다. 언제 양수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신부들이 최대한 빨리 강원대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강원도 예산으로 병원 옆에 마련한 집이다.
● 분만 인프라 부족에 “둘째는 상상도 못 해”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임신부들은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아 떠돌고 있다. 경기 안성에 사는 이모 씨(29)는 올해 1월 첫째 아이를 낳을 때 안성 지역에 분만 산부인과가 없어 아예 친정어머니가 있는 광주광역시에 가 아이를 낳았다. 이 씨는 “임신 초기에는 2주마다 안성과 광주를 오갔고 마지막 달에는 아예 광주에서 머물렀다”며 “이런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 건 상상조차 못 하겠다”고 말했다.분만 인프라가 붕괴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저출산으로 ‘수요’ 자체가 줄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2031년 인구 5000만 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수도권 큰 병원으로 쏠리는 현상도 심화된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장은 “아이 한 명 한 명이 귀하다 보니 중소병원보다는 상급종합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가 기피 과목이 되면서 분만 의사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분만의 특성상 의료진이 2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잦고 의료소송 위험성이 큰 탓이다. 설현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서울이 그나마 지방보다 분만 인프라 부족 문제를 덜 겪는 건 기존 의사들이 한계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존 의사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데 신규 인력은 투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의사뿐 아니라 분만실 간호사 구인난도 겪고 있다. 홍정아 순천향대 구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실 간호사들이 수도권으로 떠나거나 병원 내 다른 파트로 옮기면서 분만실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며 “2021년 5월부터 병원에서 자연분만은 불가능하고 제왕절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왕절개는 시기를 정할 수 있어서 자연분만보다 더 적은 수의 의료진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접근성 높이고 분만 취약지 지원 늘려야”
전문가들은 먼저 분만 취약 지역에서 산부인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는 고위험 산모의 건강을 출산 전에 미리 관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소방 등과 연계해서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가용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분만 취약지에 대한 재정 지원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 취약지에 있는 분만 산부인과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10여 년 동안 그대로”라며 “현실적으로 분만 산부인과를 신설하기 어렵다면 기존에 있는 병원이라도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