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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줄게” 기초수급자 ‘바지사장’ 만들고 불법영업 하는 주유소들

입력 | 2023-03-14 08:25:00


사회 취약자를 ‘바지 사장’으로 앉혀놓고 불법 영업을 하다가 적발되면 잠적하는 주유소들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KBS에 따르면 광양항과 제철소가 인접해 화물차가 오가는 산업도로의 한 주유소는 몰래 빼돌린 선박용 면세유를 섞어 싼 가격으로 단골을 끌어 모았다.

이 주유소는 올해 초 ‘사업 정지’ 조치를 받았는데, 1년에 걸친 불법 영업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취재진이 업주를 수소문해 보니 200km 떨어진 대전에 살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명의상 주유소 대표인 A 씨는 “신용불량자냐고 물어봐서 아니라고 나 (기초)수급자라고 그랬더니, 목돈을 해줄 테니 명의를 좀 빌려달라 했다”고 말했다. 재작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일당에게 인감 서류 등을 넘겼더니 주유소 ‘바지 사장’이 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영업을 했던 일당은 수사와 동시에 잠적했고, 검찰의 소환 통보와 2000만 원 넘는 체납 세금, 4000만 원대 주유소 채무는 모두 A 씨의 몫이 됐다,

이런 ‘명의 도용’ 주유소가 취재진이 파악한 것만 3곳이라고 했다.

석유사업법 위반으로 지난해부터 수사선상에 오른 한 주유소도 서류상의 ‘대표’는 인천의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이런 주유소들이 단속에 걸리기까지는 통상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처음부터 그 기간만 영업할 목적으로 가짜 사장을 물색한 뒤 세무조사와 수사 등의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본인들은 잠적하는 수법이라고 한다.

주유소 부지 임대인은 “잡으려 하면 이미 사업자는 바뀌어서 잡을 수가 없다. 딱 두 번 해 먹고 도망가 버린다”고 토로했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면세유라든지 항공유라든지 선박용 기름이라든지 무자료로 빼돌려서 그렇게 하는 사례들이 많다. 형사처벌도 굉장히 센 편이라 보통 바지사장 두고 한다”고 말했다.

품질 미달의 ‘가짜 기름’를 파는 주유소도 매년 70곳 넘게 적발되는데, 이런 곳도 상당수가 ‘바지 사장’을 앉혀놔 ‘실제 업주’가 처벌받은 사례는 별로 없다고 방송은 전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