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당대회의 진짜 패자를 꼽자면 안철수와 이준석이다.”
한 여당 의원은 김기현 대표의 승리로 끝난 국민의힘 3·8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46만여 명의 당원이 참여한 투표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갈렸지만, 정말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건 안철수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라는 것.
김기현(왼쪽), 안철수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정계 입문 이후 처음으로 집권 여당 당권 경선에 도전했던 안 의원은 1위인 김 대표(52.9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23.3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향후 행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초 안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선 후보 단일화에 이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을 택한 건 다분히 차기 대권을 노린 포석이었다. 집권 여당의 당권을 쥐고, 이후 내년 총선의 승리를 발판으로 차기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시작부터 차질을 빚게 된 것.
● 혼선 극명하게 보여준 3월 3일 安의 행보
전당대회에 도전하며 안 의원이 처음 꺼내 든 전략은 윤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구분이었다. 대선 후보 단일화 등을 앞세워 친윤(친윤석열) 표심에 호소하면서도, 윤핵관을 비판하며 친윤 핵심 인사들의 거친 행보에 불만을 갖고 있는 당원들의 마음도 동시에 얻겠다는 포석이었다.그러나 이런 전략은 시작부터 제동이 걸렸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는 시나리오는 당초 안 의원의 선거 전략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안 의원 간 연대를 뜻하는 ‘윤-안 연대’라는 표현은 물론이고 윤핵관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문제 삼았다.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이라는 반발도 일었지만 대통령실은 개의치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의 말.
“안 의원의 스텝이 꼬인 건 이 시점부터였다. 친윤에 이어 대통령실의 대대적인 공세가 펼쳐질 때 안 의원은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쉽게 말하면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윤 표심이 안 의원에게 쏠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안 의원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실제로 컷오프(예비경선)를 통과한 다른 당권 주자들은 자신의 지향점을 명확히 했다. 친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김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호흡을 가장 강조했다. 반면 천하람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은 윤핵관은 물론이고 대통령실까지 성토하며 ‘반윤(반윤석열)’ 색채를 분명히 했다. 두 사람의 위치 선점으로 안 의원이 중간에 낀 신세가 된 것.
그런데 전당대회 막바지 대통령실 행정관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안 의원은 전략을 바꾼다. 고발 카드까지 꺼내 들며 대통령실과 명확하게 대립각을 세운 것.
이런 안 의원의 애매한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건 3일이었다. 이날 오전 안 의원은 ‘대선 후보 단일화 1주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에 자신이 공헌했다는 점을 알려 친윤 표심을 붙잡겠다는 의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일 오후에는 안 의원 캠프의 김영우 선거대책위원장이 나서 대통령실 행정관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을 강하게 성토했다. 김 위원장은 “안철수 선대위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제의한다. 책임져야 하는 인사들에 대해 무겁게 책임을 묻고 필요하다면 직접 수사 의뢰를 하더라도 모든 걸 털고 가길 바란다. 이게 공정 상식 법치를 주장하는 윤석열 정부다운 조치다”라고 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차라리 처음부터 대통령실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모르겠는데, 선거 막판 뒤늦게 태세 전환을 한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친윤, 비윤 표심을 다 잡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국 둘 다 놓친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의 이런 행보를 두고 여권에서는 “애초부터 대통령실과 윤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읽었던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 의원은 단일화에 대한 고마움 등으로 대통령실이 자신을 최소한 비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정작 대통령실은 김 대표 지원에 노골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안 의원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 지난해 대선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이렇게 전했다.
“지난해 6·1지방선거와 함께 열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이준석 당시 대표는 안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맞붙이려 했다. 이재명 대표가 택한 인천 계양을에 안 의원을 투입해 ‘빅 매치’를 만들어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안 의원에게 경기 성남 분당을 공천을 주자는 분위기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분당을 공천으로 윤 대통령은 안 의원에게 진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安의 다음 출마 놓고 이미 부산, 전남 등 거론
전당대회에서 패한 안 의원의 입각 가능성도 나오지만 친윤 진영에서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하는 건 이런 윤 대통령의 인식 때문이다. 한 친윤 의원은 “안 의원이 장관을 하고 싶었다면 첫 조각 당시 장관 제안을 받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안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현재 지역구인 분당갑에 다시 출마하기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안 의원이 전당대회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당이 원하면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지역구였던 분당을은 2016년 20대 총선을 제외하면 국민의힘 후보가 계속 당선된 여당의 텃밭이다. 김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안 의원 정도의 체급이면 안전한 곳이 아닌 험지로 가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안 의원이 이를 거부하며 분당을 출마를 고집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이에 따라 여권 내에서는 이미 안 의원의 차기 총선 출마 지역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시작됐다. 한 여권 인사는 “안 의원의 고향인 부산을 꼽는 사람도 있다. 현재 부산에 민주당 의원이 3명인데, 그중 전재수 의원 지역구(북-강서갑)가 여당에 가장 힘든 곳이다. 아니면 당 지도부가 전략적으로 안 의원을 호남에 공천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의 호남 석권을 진두지휘했던 안 의원에게 여당의 호남 공략을 맡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안 의원의 처가는 전남 여수다.
● 실책은 있어도 실정은 없었던 安
이번 전당대회 패배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한 안 의원이지만, 만약 내년 총선에서 험지 출마 후 생환한다면 안 의원을 둘러싼 평가는 또 한번 급변할 가능성도 있다. 정계 입문 이후 안 의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이번에는…’ 기대가 또 떠오를 수 있는 것.이처럼 대체 왜 안 의원에게 항상 가능성이 따라붙는걸까. 이유는 하나, 안 의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입지 때문이다. 바로 ‘정치적 실책(失策)은 했어도 실정(失政)은 없었다는 점’이다.
실정을 하려면 일단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안 의원은 정계 입문 이후 아직까지 권력을 잡은 적이 없다. 대권은 물론이고 제1야당의 내부 권력조차 잡지 못했다. 대선에 패하고도 제1야당의 대표가 돼 당을 장악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보면 제1야당의 내부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안 의원은 2014년 당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의 대표를 맡긴 했지만, 그 기간은 4개월여에 불과했다. 이후 안 의원은 제3지대에 머물렀다. 과거 안 의원과 함께 일했던 정치권 인사는 “긴 정치 기간 동안 정치적 책임을 물을 만한 행보와 업적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안 의원에게 항상 ‘가능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동시에 대중의 일정한 관심과 지지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안 의원은 현대 정치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험을 했다.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 당선, 대선 낙선 및 후보 단일화, 서울시장 낙선 및 후보 단일화, 창당, 합당, 분당, 무소속 등을 모두 경험한 건 안 의원밖에 없다. 단 한 번의 선거에서 반짝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정치권의 주목할 만한 인사로 활동했기에 가능했던 행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전당대회 캠프 해단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곡절을 거친 안 의원은 앞으로도 쉽게 꺾이지 않을 태세다. 그의 표현대로 “10년 넘게 단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일 전당대회 캠프 해단식에서 안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편견 없고 그런 사람입니다. 낙관적인 사람이 정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우리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 정치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를 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반드시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처음 정치에 뛰어들 때의 신념은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결국 이 흐름대로라면, 안 의원은 2027년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짚어봐야 할 점 하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 주요 정당 후보 중 대선에 네 번 도전한 사람은 단 한 명, 김대중(DJ) 전 대통령뿐이다. DJ는 1971년, 1987년, 1992년, 1997년 대선에 도전했고 사실상 생애 마지막 도전에서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반면 1997년, 2002년, 2007년 등 3연속 대선에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연이은 도전에도 끝내 대권을 잡지 못했다.
만약 안 의원이 2027년 대선에 도전한다면 4번째 대권 도전이 된다. 그런데, 정식 후보 등록을 기준으로 한다면 2017년 대선부터 3연속 도전이다(그는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로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과연 안 의원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