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한국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단 금융권에서는 국내 시중은행의 자산 구조가 양호하고 고객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SVB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자산이 많이 쏠려 있는 저축은행 등은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시중은행 5곳(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의 평균 여수신 비율은 95.1%였다. 여수신 비율은 수신 대비 여신이 차지하는 비율로, 여수신 비율이 높다는 것은 고객에게 받은 예금을 대출을 통해 안정적으로 굴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국내 은행은 이처럼 여수신 비율이 높은 반면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 비율은 총자산 대비 16.9%로 낮은 편이다. 금리 인상이나 증시 급락 등 금융시장 상황이 급변하더라도 크게 손실을 볼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다. 그러나 국내 은행과 반대로 SVB는 여수신 비율이 지난해 말 기준 42.5%에 불과했고 채권 투자 비중은 총자산 대비 55%나 됐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국내 은행은 자산 구조상 대규모의 유가증권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소규모 특화 은행을 도입하려 했던 금융당국의 추진력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SVB를 특화 은행 도입을 위한 해외 참조 사례로 검토했지만 SVB가 파산하면서 중소형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당국 내에서도 “특정 부문에 대출이 집중된 은행은 건전성 충격을 다른 분야 여신으로 흡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강우석기자 ws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