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뮤추얼(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은행)도, FTX(지난해 11월 파산한 미 가상화폐 거래소)도 파산 직전까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은행으로 갈아타는 것이 답인가.”
미국의 지역 기반 중소형 은행 예금주들은 13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등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에 동참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10일 실리콘밸리은행(SVB), 12일 시그니처은행 등이 잇따라 파산하고 13일 뉴욕 증시에서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지역 은행주 또한 급락하자 예금주와 주주들 사이 급속도로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 ‘틈새 공략’ 중소銀, 환경 변화에 취약
13일 뉴욕 증시에서 지역 기반 중소형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61.9%), 웨스턴얼라이언스(-47.1%), 지온스(-25.72%)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각각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애리조나주 피닉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기반으로 한다.이 은행들은 특수 영역에서 틈새시장을 찾아는 방식으로 영업해왔다. SVB도 테크 산업 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베이 애어리어 일대 포도주 회사들과 끈끈한 거래를 유지해 왔다. 지난주 뱅크런 우려 속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JP모건으로부터 7억 달러(9151억 원) 긴급 자금 지원을 받은 퍼스트리퍼블릭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의 대부호 고객 위주의 영업으로 유명하다. 고급주택 담보대출 비중도 높다.
고객이 특정 그룹에 편중되다 보니 연준의 고강도 긴축 등 거시 환경 변화에는 취약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급증한 예금을 관리할 만한 경영진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트위터에 “SVB는 현금(예금)을 쌓아놓고도 전문가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어디에서 수익을 내야할지 몰라 미 국채를 과도하게 매입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진단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3일 시그니처은행의 투자등급을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등급인 ‘C’로 부여했다. 퍼스트리퍼블릭 등 5개 미 지역 은행에 대한 등급 강등 또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추가 파산 없이 48시간 지나야 진정될 것”
고객 예금 보증으로 당장의 불안은 잠재웠지만 미 중소형 은행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고객들은 중소형 은행에서 돈을 빼 대형 은행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엘리슨 헤네시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로이터통신에 “이런 상황이 계속 확대되면 중소형 은행에서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위기가 미 최대 온라인 증권거래업체 ‘찰스 슈왑’ 등 장기 채권 보유량이 많은 대형 금융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3일 찰스 슈왑 주가 또한 11.6% 하락했다. 존스 트레이딩의 마이크 오루크 시장수석전략가는 CNN에 “추가 파산 없이 48시간까지 버텨야 현재 가장 큰 문제인 ‘신뢰의 위기’가 진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VB 사태의 여진은 14일 아시아 증시도 덮쳤다. 14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2.56% 하락한 2,348.97로 마쳤다. 성장주 중심의 코스닥시장은 더 큰 타격을 입어 전날보다 3.91% 떨어진 758.05에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 역시 2.19% 떨어졌다. 대만과 홍콩 증시도 1%대 하락했다.
지역 은행을 위기로 몰아넣은 국채 금리는 위기 확산에 크게 흔들렸다. 13일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준 고강도 긴축 완화 전망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0.57%포인트 하락한 연 4.03%로 거래를 마쳤다. 1987년 미 증시 급락 ‘블랙 먼데이’ 이후 최대 낙폭이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박민우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