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5조9000억 발행 그쳐…연초 효과 사라지며 관망 국면 우량 제조업체 목표액 넘겨 흥행…금융-PF 관련사는 잇단 미달 사태
올해 초부터 조 단위 뭉칫돈이 줄줄이 몰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회사채 시장이 이제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습이다. 기관투자가들이 자금 집행을 재개하는 연초효과가 사실상 끝나면서 시장이 ‘숨 고르기’에 돌입한 셈이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폭풍 등의 불확실성도 한동안 회사채 시장의 관망세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반면 A급 이하 비우량 기업들에 대해서는 편차가 심했다. 제조업 기반 발행사들은 흥행했지만, PF와 관련이 있는 A급 발행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토지신탁은 총 800억 원 모집에 560억 원의 매수 주문을 받아 1.5년물에 240억 원이, 한신공영은 1년물 500억 원 모집에 450억 원 미달됐다.
금융사들의 채권도 시장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수요예측서 JB금융지주는 1500억 원 모집에 1020억 원의 자금만 몰려 480억 원이 미매각됐다. 또 현대차증권은 일반 회사채 수요예측서 총 1000억 원 모집에 3년물서 250억 원이 미매각됐다. 더욱이 ABL생명보험은 후순위채 수요예측서 700억 원 모집에 나섰으나 매수 주문을 전혀 받지 못했다.
우량 대기업 회사채가 아닌 다른 채권들은 증권사 리테일 부서 등에서의 개인투자자를 찾기 어렵고, 시장에서도 매도가 쉽지 않다 보니 여전히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금융사들의 영구채나 후순위채 등은 높은 금리를 제시하지만, 일반 회사채 대비 변제 우선순위가 밀리다 보니 투자자들의 선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신용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확산되고 있다”며 “등급별, 업종별, 그룹별 등에 의한 선호 현상에 따른 차별이 두드러지는 국면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미 연준의 긴축 장기화 전망도 채권금리 급등으로 3월 회사채 시장을 위축시켰던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SVB 사태의 영향으로 연준이 긴축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기대감에 회사채 금리는 다시 내림세다. 14일 기준 AA마이너스(―) 3년물 회사채 금리는 전일보다 0.064%포인트 내린 4.085%, BBB―는 0.065%포인트 내린 10.515%를 나타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와 관련해 “회사채 시장 안정화 정책이 지속되고 있으며, 40조 원 이상의 지원 여력을 감안할 때 국내 회사채 시장의 영향은 제한적이다”고 분석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