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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노예[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86〉

입력 | 2023-03-15 03:00:00


시대는 때때로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 순암 안정복도 그러했다. 그는 당대의 가치관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편이 죽었을 때 부인이 살아도 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의탁할 곳이 없는 시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와 자식들이 너무 어려서 남편 제사를 맡길 데가 없는 경우였다. 그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혼자 사는 여자를 가리켜 “경중(輕重)을 모르는 과부”라고 했다. 아내는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한다는 게 당대의 유교적 가치관이었다.

남편이 병으로 죽자 어린 자식들을 두고 목숨을 버린 어떤 부인을 그가 칭송한 것은 그러한 가치관에 예속된 탓이었다. 그 부인에게는 남편 형제들이 있어서 시부모 봉양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홉 살 된 아들과 열네 살 된 딸이 있었다. 그래서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죽기를 자청했다. 자식들이 울며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녀가 어린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는 이랬다. “내가 너희들에게 연연하고 있을 수 없어 너희 아버지를 따라간다. 너희들이 잘 커서 뒷날 지하로 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어라.” 순암은 그 과부가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낫다고 칭송하며 집안사람들에게 본받으라고 장문의 글을 남겼다.

지금 돌아보면 모두가 시대의 노예였다. 그래서 목숨보다 이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순암은 아이들을 두고 죽은 어머니를 칭송함으로써 시대의 폭력에 공모했다. 주자학적 가치를 내면화하여 죽음을 택한 여성은 칭송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었어야 했다. 그리고 더 큰 연민의 대상은 아이들이었어야 했다. 순암은 어머니의 자살로 상처받고 어머니 없이 살아야 할 아이들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따뜻한 연민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복종한 결과였다. 시대의 한계는 그의 한계, 아니 모두의 한계였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그런 일이 없을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