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위기 극복] 작년 32명 출생 경북 영양군 르포 지방소멸 막는 ‘임팩트 금융’ 주목
9일 경북 영양군 화천2리의 빈집에 베개와 이불 등 생활용품이 흩어져 있다. 최근 10년간 이곳에는 약 20채의 빈집이 생겼다. 영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재작년 겨울, 생후 3개월이던 둘째 아이가 폐렴을 앓았을 때도 김 씨는 아이를 안고 어두운 산길을 운전했다. 한겨울 응급실 문 밖에서 아들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김 씨는 이사를 고민했다. 그는 “영양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한 번쯤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걸 생각해봤을 것”이라고 했다.
영양은 소멸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태어난 출생아는 32명으로 사망자(295명)의 9분의 1에 불과했다. 1970년대 7만 명에 육박했던 영양군 인구는 지난달 1만6000명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영양군 주민 87% “인구 늘수 있다면 기피시설 유치도 환영”
“소아과 찾아 50km 운전”
면적은 서울 1.3배… 4차로 하나 없어
“인프라 부족-인구감소 악순환 빠져
1200명 살던 ‘대티골’, 이젠 54명 뿐”
2019년 폐교된 경북 영양군 영양중학교 입암분교에 교훈 등을 적은 액자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1963년 문을 연 이 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2019년 폐교될 때까지 약 5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폐교 후 임시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영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혼자 지내는 노인이 사망하거나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집만 남겨진다.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문에 발라둔 창호지가 뜯겨 집 내부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전기요금 고지서와 옷가지, 깨진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2020년 기준 화천2리에는 주민등록상 129명이 거주 중이지만 실거주자 수는 약 80명에 그친다. 화천2리에서 가장 젊다는 황영삼 이장(58)은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그대로 둔 채 요양병원에 가 계신 어르신이 많다. 최근 10년간 새로 생긴 빈집이 20곳은 된다”고 했다.
지난해 3월 기준 영양의 ‘소멸위험지수’는 0.14로 전국 13위다. 노인 100명당 20∼39세 여성이 14명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영양군청 관계자는 “인구가 줄어드니 의료·교육 등 인프라가 사라지고, 인프라 부족으로 사람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 1200명이던 광산촌 인구 54명으로 급감
하지만 1976년 폐광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마을은 급속히 쇠락했다. 제련 과정에서 토지가 오염돼 농사를 짓기도 쉽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직업을 찾아 마을을 떠났고, 남아 있던 노인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2020년 기준 용화2리 거주민은 54명이다.
이곳에는 광석 제련소로 쓰이던 15층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번화하던 시절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30여 가구가 길을 따라 30∼100m 간격으로 듬성듬성 자리 잡았다. 과거 1000명이 넘는 주민이 살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산 중턱 곳곳에는 마을 터로 추정되는 평지만 보였다.
● “인구 늘 수 있다면 교정시설도 환영”
영양은 새로운 일자리 유치를 통해 변신을 하려 한다. 하지만 서울 면적의 1.3배인 군내에는 고속도로, 철도는커녕 4차선 도로조차 없다. 교통 인프라가 부실하다 보니 공장이나 물류센터 등이 들어서기 힘든 구조다.이에 영양군청은 ‘재소자 1000명 규모 교정시설 유치’를 역점 사업으로 제시하고, 1년 넘게 법무부 교정본부에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선 기피시설로 취급되지만 영양에선 ‘인구만 늘 수 있다면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10월 설문조사에서 영양주민 86.6%가 교정시설 유치에 찬성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교정시설이 들어오면 교도관 등 직원 500여 명이 영양에 전입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면회객을 대상으로 한 숙박·음식점업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영양군은 귀농 정책도 실시하고 있지만 전망이 밝진 않다. 인근 지역에 비해 의료시설이 부족해 은퇴 귀농인을 영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영양군청 관계자는 “의료, 문화시설이 부족한 영양에 귀농인을 불러들이려면 다른 지자체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지역 예산만으로는 쉽지 않다”며 “영양에 정착한 귀농인이 다른 지역으로 갈까 봐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양=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